09.11.08

<박민규> - 한겨레출판 \8,500

 묘한 구석이 있는 후배로부터 추천을 받아 접하게 된 이 책.. 평소에 롯데 자이언츠의 열혈 팬으로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이 제법 익숙하게 느껴졌다. 극히, 정말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던 팀 삼미 슈퍼스타즈.. 별을 덕지덕지 달고 있는 슈퍼맨(삼미의 로고) 마냥 우스꽝스러운 이 팀에게서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보나마나 뻔하디 뻔한 감동 정도겠지라고 방심하고 있던 나는, 웬걸 그들에게 만루 홈런을 맞아 버렸다.

 참 가볍다. 그랬거나 말거나, 그러든지 말든지 그의 문체는 참 가볍다. 자본주의 사회 속의 인생이라는 막강한 투수를 상대하기엔 너무 가벼운 방망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하.. 그랬다 나는 여기서부터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을 잡지 않는 것이 그들의 야구인 것을.. 무언가를 ‘상대 한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세계였던 것을..

 잊고 있었다. 아주 그냥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경쟁이라는 족쇄 속에서, 프로의 굴레 속에서 나는 지금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 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경쟁과 경쟁하고 있다’라는 말이 적확한 표현이겠다. 이렇게 이름 모를 적에 가슴을 졸이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닌 탓일까. 요즘은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힘들단다. 남들처럼,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기가 무척 어렵단다. 잠깐, 왠지 모르게 이름모를 시커먼 놈의 함정에 걸려든 느낌이 든다. 남들처럼 평범하게라.. 그것이 과연 평범함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요즘 시대의 ‘평범함’을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소재를 가지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사실, 꼴찌라고 놀림 받는, 초라해 보이는 1할 2푼 5리의 승률을 올리는 것이 바로 평범한 모습일진데, 어느 사이에 3~4위를 하는 것이 평범한 것 내지는 조금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로라는 이름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높아진 평범의 문턱을 넘기 위해 2스트라이크 3볼의 상태로 잔뜩 긴장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는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고 말한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잠시 쉬어갈 것을 말한다. 아! 우리는 여유를 누리기 위해 여유를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여유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이쿠, 가슴 한 구석이 시원해져오기 이전에 눈이 부시다. 잠시 눈을 깜빡깜빡, 주위를 둘러본다. 아, 세상이란 이토록 선명한 빛을 간직하고 있었던가. 문득 그동안 너무 한 곳만을 바라보며, 하늘 한 번 마음 편히 올려다보지 못하며 살아왔던 내 모습이 서글퍼진다. 아, 작가가 지금 구원투수로 올라와 9회말 2S 3B의 상태인 나에게, 우리에게 공을 던질 준비를 한다. 매서운 스트라이크가 아닌, 보든지 말든지, 휘두르든지 말든지 볼이 될 그런 공을.. 자, 모두 긴장하지 말고, 뛰지 말고, 따라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플레이 볼!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평범한 야구를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확실히 평범한 야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삼미는 그토록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팀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걸까.” - p125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꽤 노력을 해도 부끄럽긴 마찬가지고, 무진장,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해봐야 할 만큼 한 거고, 지랄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좀 하는데’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의 노력을 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꽤 이상한 일이긴 해도 원래 프로의 세계는 이런 것이라고 하니까.” - p127

“문득 여름밤의 별들은 필요 이상으로 한가한 삶을 사는 듯했고, 거기 비해 나는 필요 이상으로 바쁜 삶을 사는 듯했다. 어쩌면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변한 게 아닐까.” - p134

“이상한 일이지만 우수한 성적에게도, 평범한 성적에게도, 저조한 성적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진로는 불과 일주일 사이에 결정 났고, 4지 선다형의 교육은 4지 선다형의 진로만을 펼쳐놓았다.” - p139

“이른바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집단에서도 이 ‘소속’의 콤플렉스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사실 그래서, 인간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 p144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투 스트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이제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 p235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 p265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 p278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마지막팬클럽,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