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09 
<트레이시 슈발리에> - 강 문학 \9,500

 작가의 눈과 화가의 눈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록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쓴다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의 차이를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두 길이 결국 하나의 길로 이어질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여주는 그림과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여주는 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귀고리 소녀>는 그 두 가지 매력이 혼합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동안 미술에 취미를 가져보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책을 봐 왔지만 이 책만큼 그림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던 책은 없었다. 사실, 다른 책에서도 수많은 그림을 볼 수 있긴 했다. 조금만 뒤져보아도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득 찬 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는 탓일까, 다양한 그림을 기회를 얻은 대신 그것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를 잃은 듯 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느낌은 내가 미술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서 하나의 딜레마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림의 겉은 보되, 그 속까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아쉬움. 이 한숨 섞인 탄식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내 고민을 말끔하게 해소시켜 주었다. 베르메르의 그림에 가미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상상력이 내 생각을 연장시켜 나가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뼈대만 유지하고 있던 앙상한 내 생각에 상상력의 살을 덧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그림을 만나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었던가!

 이러한 즐거움과 더불어, 한 그림을 소재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이 그저 놀랍다. 작가는 화가의 작품 속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시킬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잘 짜여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할 것이 무척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그것이 강한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는 이,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따듯한 애정.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서 그의 애정을 보았고, 그 뜨거운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진주귀고리 소녀>라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림과 문학..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보는 이에 대한 애정이라는 하나의 길로 이어짐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림 속의 소녀와 이야기 속의 소녀가 나에게 던지는 시선.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조용히 그 시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한층 더 그녀와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작품 속에서 베르메르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우리를 바라보며 기대했던 것이 아닐까. 다채롭게 즐길 수 있기에,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기에 예술은 그저 즐겁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껏 살아온 도시가 그의 그림 속에서는 전혀 낯선 장소 같았던 것이다.” - p83

“가톨릭이건 개신교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이 아니야. 문제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과 그들이 무엇을 보기를 기대하는가에 있지. 교회 안의 그림은 어두운 방안에 있는 촛불과 같은 거란다. 더 잘 보기 위해서 쓰는 촛불 말이다. 그림 역시 우리와 하느님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거다. 개신교의 촛불이건 가톨릭의 촛불이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그림은 단지 촛불일 뿐이니까.” - p177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자들.. 그 여자들을 그는 자기의 세계에 가둬놓고 있어. 너 역시 거기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 - p236

트레이시슈발리에, 진주귀고리소녀, 베르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