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31

<김탁환> - 살림 \12,000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천년습작>.. 북 카페 이벤트 게시판에 올라온 순간, 정말 이 책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뭐랄까 왠지 모를 필연성이 부가되는 느낌) 그래서 문득 찾아온 당첨소식이 나의 기분을 더없이 좋게 만들어 주었다. ‘습작’이라는 것의 이미지와 고심하며 글을 쓰고 있는 김탁환님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과연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의 ‘글쓰기’ 실력을 쌓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이러한 기대와 함께 언제나 끊임없이 갈구하는 ‘학생’의 모습으로, 천년습작이라는 ‘특강’에 출석하기 위해 책장을 펼쳤다.

강의, 혹은 대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버린 선배의 충고..

 김탁환님의 ‘특강’을 듣기에 앞서, 나는 ‘강의’란 이름에 약간은 겁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글쓰기 특강’이라고 하면 왠지 학교에서 하는 글쓰기 강의의 느낌이 들어서 뭔가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이 먼저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천년습작>이라는 강의를 듣는 도중에 이러한 걱정들은 말 그대로 ‘따듯한’이라는 분위기 속에 슬며시 녹아 버렸다.

 이렇게 무려 16강이라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작가’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법을 듣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존경해 왔던 ‘작가’라는 인물이 직접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귀중한 순간 속에서 나는 마치 그의 ‘내제자’가 된 묘한 기분이 들어서 더욱 더 집중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테크닉’이 아닌 ‘알맹이’를 가르쳐 주는 책..

 지금 이 서평을 쓰는 순간, 나는 표지의 김탁환님과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문득 드는 묘한 동질감.. 글을 쓸 때의 ‘자세’를 나도 조금씩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글을 쓴다’라는 말을 하기에도 정말 부족한 실력이지만 <천년습작>을 읽으면서 이따금씩 드는 이 동질감이 더 없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만약, <천년습작>이 ‘글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면 이러한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초보자이기에, ‘테크닉’을 논하는 책이었다면 분명히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힘겨워 하며 책을 넘기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그것이 비록 필수요소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행히도 그런 ‘테크닉’을 논하는 책이 아닌, ‘알맹이’를 가르쳐 주고 있는 책이었다.(내 마음대로 알맹이를 논한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나의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이니 그것을 따르기로 하겠다)

 내가 <천년습작>에서 찾았다고 하는 ‘알맹이’는 바로, 글을 쓰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자세’는 특정한 모습을 가진 것이 아니다. 다만, <천년습작>에서 인용된 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김탁환님의 여러 생각들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진화에 관련된 것에서부터, 작가의 방을 탐구하여 방 꾸미는 것까지 가르쳐주는 ‘따듯함’이 자연스럽게 ‘글을 쓸 때의 자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해 준 것이다. 이렇게 부드러운 흐름의 과정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알맹이를 하나씩 발견했기에, 이따금씩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文靑(문학청년)’이고 싶어라..

 참.. <천년습작>을 읽으면서 밑줄 치기에 바빴고, 인용된 여러 책들을 적느라 바빴던 것 같다. 내 마음을 울렸던 구절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것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싶은 일종의 ‘욕심’이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욕심은 그 구절들을 음미해 봄으로써 나를 ‘매혹의 시간’ 속에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비록, 내가 <천년습작>을 읽고 있을 때가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이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나는 조금은 바쁜 일상 속에서 나만의 매혹의 시간을 맞이했기에 놀랐고,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님에 또 한 번 놀랐다.(박완서님이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주위의 자연이 달라 보인다는 구절을 읽고 느꼈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하다’라는 생각, 이 생각이 내 속의 작은 씨앗에 싹을 틔워 준 것 같다.

 그저 영문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기에 ‘영문학도’라는 우스운 타이틀을 내 마음대로 내 이름 앞에 달고 다니는 나로서는 ‘文靑’이라는 호칭이 그저 탐스럽게만 보였다. 급기야 ‘文振秀

라는 내 이름 속에 文靑의 가능성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참 기묘한 우연이구나, 이것은 운명인가‘ 하는 기묘한 생각까지 할 정도로 내 속에서 싹을 틔운 그 작은 새싹에 큰 기대를 하게 된 것 같다. 하하 비록 이 생각이 허무맹랑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나는 예전에는 못 느꼈던 이 새싹에 자부심을 가지며, 비록 그것을 천년동안 쓰게 될지라도, 여러 종류의 ‘습작’을 써 나갈 수 있는 그런 문청으로 거듭나고 싶다. 훗날 내 새싹은 어떤 모습의 나무로 성장해 있을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나 또한 많은 ‘후배’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그런 튼튼한 나무로 무럭무럭 커나가고 싶다.

내 인생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

 아무리 생각해도 <천년습작>을 읽을 때 느꼈던 그 커다란 감정을 여실히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그저 아쉽기만 하다. 내 표현력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진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쓰자. 결국 글을 쓰는 것은 ‘손’이라는 데, 나는 너무 손을 쓰는 것에 게을렀던 것 같다. 그 동안 해왔던 것을 약간은 수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다. 과연 <천년습작> 내 인생을 얼마나 흔들어 놓았을까? 그것이 올바른 흔들림이 되려면 나 역시 많은 노력을 해야 하겠지.. 비록 내 글이 ‘습작’이 되더라도 의미 있는 ‘습작’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미셸 투르니에처럼 김탁환님도 ‘작가’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작가’는 ‘작가’란 생각이 든 책이었다. 하지만, 작가 이전에 ‘선배’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책을 통해 알게 된 선배에게 ‘책 잘 읽었다고’따뜻한 엽서한 장 보내드리고 싶다. 분명, 크게 기뻐하실 것 같다. 어린이의 달도, 성인의 달이기도 한 5월을 마무리하면서, 서평을 마친다. 아! 그리고.. 이 책에 우연히 ‘허영만’ 화백의 싸인을 받게 되었다는 점은 이 책을 더욱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김탁환님의 책에 싸인을 받았다는 것이 죄송스럽지만...)

“노래를 배우려고 할 때도 자기 목청에 맞는 음이라면 모두 자연스럽고도 간단히 낼 수 있지만 목청에 맞지 않는 음을 내기란 처음에는 무척 어렵지. 하지만 가수가 되려면 그것을 극복해야 되네. 어떤 음이라도 능란하게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네. 시인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네. 그저 허술한 주관적 감정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결코 시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러나 이 세계를 제 것으로 만들어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는 바로 진정한 시인이 되는 거네.” - p14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 p20

“글을 쓴다는 것은 ‘매혹 아래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p25

“문제는 자기의 시간을 글 쓰는 것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작업도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하는 것,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 속에 돌입하는 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 p31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 p66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결국 작품은 손으로 쓰는 겁니다.” - p71

“한데 이렇듯 실수만 하는 인물이 왜 사랑스러울까요. 실수 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사실은 실수를 해버리는 것이 속 시원하겠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p128

“여행과 글쓰기는 닮았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여 한 편의 긴 작품을 완성하듯 한 걸음 한 걸음을 디뎌 오랜 여행을 시작하고 마치지요... 여행 혹은 글을 시작하고 어느 순간이 오면 그 예상을 뛰어넘게 됩니다.” - 177

김탁환, 천년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