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25

<요시다 슈이치> - 은행나무 \10,000

 또 다시 읽게 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참.. 이제는 나도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했던 <악인> 다음에 쓴 작품이라 더욱 더 기대가 되었다. ‘이제 다시는 연애다!’라는 띠지를 두르고 있는 이 녀석..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소설’이라고 하면 에쿠니 가오리의 것처럼 어둡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것처럼 따뜻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그런 묘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조금은 ‘차갑다’라고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도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 작품 속에서 요시다 슈이치는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을지 궁금해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연애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위에서 말했듯이 ‘이제 다시 연애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완벽한 ‘연애 소설’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친숙한 이름의 ‘슌페이’와 ‘교코’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겠구나 하는 예측이랄까.. 하지만, ‘소리가 안 들리는 여자’라는 교코의 특수함 때문이었을까 나에겐 ‘사랑’ 이야기보다는 다른 것이 많이 전달되어 왔던 것 같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소리’를 일시에 제거함으로서 나로 하여금 ‘소통’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구어’와 ‘문어’ 두 가지의 소통법..

 <사랑을 말해줘>에 나오는 슌페이와 교코는 다소 특수한 소통을 하고 있다. 교코가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필담’을 통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선 주로 ‘구어’보다는 ‘문어’에 의해 소통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입말’이 아닌 ‘글말’로 대화를 한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 대화의 모습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다.

 <사랑을 말해줘>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구어’에는 ‘잡음’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전적으로 감정에 충실하여 여러 가지 말들을 내뱉듯이 표현하는 것, 그 말 속에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문어’는 다르다. ‘글을 쓴다’는 행위를 거치면서 자신이 할 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만큼 말을 함에 있어서 신중하게 되는 것이다.(아마도, 구어보다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이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구어였다면 화를 내는 말이었는데 글 이라는 수단을 통하면 신기하게도 그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문어라는 녀석은 구어에 비해 그것이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감정을 여실히 담아내기가 조금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진심을 전하고 있을까..

 <사랑을 말해줘>에서 슌페이는 메모에다 글을 써서 소통을 할 때 이따금씩 ‘굳이 이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구어의 ‘잡음’을 스스로 제거하는 모습을 보인다. 뭐.. 이렇게 ‘잡음’을 제거한다는 것은 좋은 일 일수도 있으나, 표현해야 할 감정까지 지워버리는 모습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귀찮게 보인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과정에서 슌페이의 ‘진심’이 지워져 교코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통의 부재 속에서 교코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진심을 전하고 있을까? 우리도 작품 속의 슌페이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고, 반년을 같이 지냈지만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다음’이 있겠지 하는 안도감 속에서 자꾸만 소통을 미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소통의 불완전성 속에서 우리는 진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잃어버린 진심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교코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사라지게 될 것이다.(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굳이 자리를 뜬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 대한 ‘가면’을 준비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선 우리는 ‘진심’으로 소통을 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진심이 되어 그 마음을 전하려 한다면 그것이 구어가 됐든 문어가 됐든, 그 감정을 여실히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이런 점 때문에 비록 그것이 문어의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심을 다해 쓰는 편지나, 여러 글들 속에서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겠지..) 그리고 이렇게 진심을 전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작품의 제목처럼 비로소 ‘사랑’을 말해 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요시다 슈이치의 많은 작품을 보아왔지만 그는 정말 ‘전달’을 잘하는 작가인 것 같다.(실제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읽고 서평을 쓸 때는 뭔가 홀가분한 느낌이든다) 문어라는 수단은 구어보다 감정을 담아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감정들이 여실히 전달되어 온다. 이렇게 감정이 잘 느껴지는 이유는?고 싶은 생각, 감정들을 ‘작품’이라는 공간 속에 충분히 쏟아내고 있기에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마치 그와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닐까. 그 덕분에 덩달아 내가 서평을 쓸 때도 진심으로 마주하게 되어 홀가분한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독자로 하여금 진심으로 그 작품을 대하게 만들어 주는 작가, 요시다 슈이치.. 그의 대단함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서평을 마친다.

“우리가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주위는 시끄럽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 텐데, 교코와 함께 있을수록 주위의 소리는 사라져갔다.” - p16

“‘갈 거니까’라는 말에는 다음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간다’는 행위에는 그 다음이 없다.” - p22

“아주 사소한 정보 조작만으로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보이고, 밀고자로도 피밀고자로도 보일 수 있다 생각하니 내심 기분이 상했다.” - p81

“물어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째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뭔가를 확인하려드는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 p128

“전화 한통 걸 시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말은 세간의 상식이 되어버린 듯한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세간에는 여유로운 사람들뿐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만 정말로 전화할 여유조차 없는 흐름이라는 게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줬으면 한다.” - p175

요시다슈이치, 사랑을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