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23~24

<김근우> - ROK media \11,500

 오늘은 이벤트로 어떤 책이 등장할지 기대를 하면서 북 카페 이벤트 창을 띄웠다. 이벤트로 올라온 책은 김근우 님의 <피리새>였다. 왠지 ‘김근우’라는 이름이 낯익다는 느낌이 들어서 클릭을 해보았는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정말 심취해서 읽은 <바람의 마도사>를 쓴 분이었다. 문득 ‘판타지’란 장르의 책을 고등학교 땐 정말 많이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에 있는 서점의 판타지란 판타지는 다 읽었을 정도니까..(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판타지 책을 거의 읽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예전만큼의 재미가 없어졌다고나 할까.. 이것저것 ‘양서’를 읽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이사를 와서 ‘책방’을 찾지 못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간만에 보는 판타지 책 <피리새>이어서, <바람의 마도사> 김근우님의 작품이어서 내 기대는 표지의 나무처럼 무럭무럭 커져만 갔다.

간만에 읽는 판타지 책..

 일단, 처음 책을 받고 놀랐던 것은 무척이나 두툼한 두께였다.(그 유명한 <묵향>의 1권보다 두꺼웠다) 이 두툼한 두께만으로도 약간 부담이 되었는데 같은 두께의 책이 한권이 더 있다니..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그 방대한 분량에 압도당해 약간 읽기 버겁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하지만, 10권정도 되는 판타지 시리즈물을 놀라울 정도로 재밌게 읽던 내가 2권 분량에 부담감을 느끼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피리새>를 판타지 책으로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한국적 판타지’를 만나다..

이렇게 판타지 책인 <피리새>를 판타지로 보지 않았던 이유는 평소에 보던 ‘서구적 판타지’와 달랐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해, <피리새>에는 ‘한국적 판타지’라는 미묘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바리데기’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피리새 이야기.. 널리 알려져 있는 설화를 ‘새롭게’(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재해석하여 이렇게 잘 짜여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도 똑똑한 독자의 ‘식상하다’라는 잣대를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하니까 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김근우님의 <피리새>에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무당, 바리데기, 신단수 등의 여러 설화가 한 곳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란 정말 감탄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람’과 같은 주인공의 이름 하나하나에도 신경 써 주는 등의 섬세함이 그 우수함을 더 빛나게 만들어 줬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장점들과 여러 갈래의 설화들이 하나하나의 튼실한 뿌리를 이루어 <피리새>라는 작품을 잘 자란 ‘신단수’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평소에 보던 ‘실프, 운디네, 살라만다’ 같은 존재가 아닌 주몽, 처용, 바리데기 등의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더 없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다지 실감이 안 났던 존재들의 이야기에서 조금은 현실감이 느껴지는 존재들을 만났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 존재들이 너무나도 친숙하게 느껴졌기에 <피리새>가 마치 판타지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재밌게 읽었던 우리나라의 판타지 문학.. 나는 <피리새>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처럼 우리 판타지 문학도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살며시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문학’이라는 뿌리를 깊이 내려 무럭무럭 성장해나가는 나무처럼 이렇게 열매를 맺어 나간다면 언젠가 ‘우리 판타지 문학’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갇혀 있다’는 건 수동적인 의미입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의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자기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능동적입니다. 지나치게 능동적이기 때문에 자기 세계에만 있게 된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가둔 거죠.” - 상 p134

“어쩌면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신화나 전설도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 상 280

“인간은 운명을 알 수는 있어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바꿀 수 없으니까 운명이라는 겁니다.” - 상 p355

“해가 동쪽에서 뜨는 건 원래 그런 거잖아. 누군가가 그 사실에 불만을 품거나 해를 원망한다면 엄청 우습지 않겠어? 우리는 날 때부터 ‘원래 그러한 세상’에 ‘원래 그렇게’ 태어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도 운명을 받아들이겠어.” - 하 p166

“사람이 식물을 동물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등을 돌려도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리 오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따라오지도 않는 나무를 사람이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 하 p290

“네 말대로 정말 운명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최후의 자유가 있지 않을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말이야.” - 하 p314

“운명은 때때로 가혹하지만 사람이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 하 p320

“무란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이 아니라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 하 p401

김근우, 피리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