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28
<조지오웰> - 민음사 \9,500
 최근에 출판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그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 <1Q84>는 출판 즉시 각 종 도서 사이트와 도서 카페의 수많은 책쟁이들을 흔들어 놓았다. 나 역시,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어왔기 때문에 신작에 대한 호기심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물론 그 책은 모기업의 방침에 따르면 클릭 한 번과 동시에 총알 같은 속도로 내 손에 들어오겠지만 왠지 <1Q84>를 먼저 읽기가 망설여졌다. 마치 <1984>의 커다란 두 눈이 나를 노려보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독서를 함에 있어서 책에 대한, 그리고 작가에 대한 예의를 따지는 나로서는 조지오웰의 <1984>를 읽지 않고 하루키의 <1Q84>를 읽는 것은 두 작가에게 무척 무례한 행동을 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하루키의 <1Q84> 때문에, 혹은 덕분에 조지오웰의 <1984>를 만나게 되었다.

 아! 그저 <1Q84>를 읽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했던 내 동기가 작가의 심기를 건드린 탓일까, 그는 <1984>를 통해 나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 그의 무자비한 손놀림 속에서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고도의 정보사회라고 불리는 이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나갈 수 있는지 가차 없이 드러났다. 그가 그려낸 디스토피아, 빅 브라더에 의해 지배되는 암울한 사회.. 나는 그 철저한 묘사 앞에서 마치 전기고문을 받고 있는 주인공 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흔적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텔레스크린이 붙어 있고, 그것을 통해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사회.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여기서 수상한 짓이란 오로지 당의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혼자 사색을 하는 행위조차 당의 기준에선 수상한 짓이다)을 하면 텔레스크린을 통해 경고를 받거나, 곧바로 사상경찰이 들이 닥친다.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는 빅 브라더의 두 눈 앞에서, 사생활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시민에겐 과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시각각 바뀌는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서 당은 끊임없이 과거를 조작하고, 그 과정에서 어긋나는 인물들은 가차 없이 증발시켜 버린다. 그리고 당을 이끌어나가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중사고’를 통해 과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한다. 현재, 과거가 항상 뒤바뀌기에, 그리고 그것이 뒤바뀌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기에 시민들은 현재를 생각할 힘조차 잃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신어 활용이라는 강력한 공격 역시 시민을 뒤덮는다. 이 정책은 불필요한 말(이것 역시 철저히 당의 판단 아래 이루어진다)을 제거하여 의사소통의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좋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을 파고들어 보면 그저 시커멓다. 이것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언어 제한을 통한 사고의 폭 축소이다. 당의 정책에 반대하고 항의를 하려고 해도, 시민들은 이미 ‘반대’, ‘거절’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모른다. 반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기에 무언가에 반대한다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그저 멍하니 당이 제시해주는 제한된 언어에 의해 제한된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작된 정보에 의해 지배받고, 끊임없이 감시되기에 그 정보를 시간도 없는, 그리고 분석할 도구인 언어조차도 조작되어 있는 사회 1984.. 이 사회에 사는 시민들은 당이 2+2=5라고 하면 그것은 5이고, 또 다시 2+2=4라고 하면 그것은 4라고 말한다. 당의 철저한 이중사고(기억을 정리하거나 기록된 자료를 허위로 변경했다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행위. 그리고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 시민들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변해간다. 어느 사이엔가, 그들은 지배당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배당하며 살게 될 것이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무섭다. 조지오웰이 그리고 있는 사회를 살짝 떠올려 본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1984>의 조각들이 발견된다는 것이 더욱 무섭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들, 정부의 패킷 감청 논란 등등.. 어느덧 우리 사회도 조지오웰이 제시한 ‘빅 브라더’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로 진입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우리는 <1984>의 시민들처럼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조지오웰의 <1984>와 같이 우리 삶에 경고를 던지는 문학 작품이 여럿 존재한다. 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뛰어난 작품들에 의해 우리는 조작된 정보의 늪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아!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끊임없는 독서가 필요한 것인가! 정말.. 독서의 당위성이란 도처에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서운 것은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당한다는 사실을 아무 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다. 비록 억압에 무릎 꿇게 되더라도 잊지 말자. 생각하는 것의 힘을, 생각의 자유가 주는 행복을.. 억압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1984>를 읽은 독자들이여, 텔레스크린에 비친 두 눈을 사정없이 노려봐 주자! 그리고 당당히 소리치자. 우린 결코 쉽게 당하지 않는다! 빅 브라더의 매서운 두 눈 앞에서도 당당해졌기에, 이제 하루키의 <1Q84>에 대한 예의를 차린 독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언제나 밤중에 사라져버린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은 호적에서 지워지고, 그에 관한 모든 기록도 말소된다. 그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도 부인되고, 끝내는 완전히 잊혀져 버린다. 그러니까 그는 아예 없어져 무(無)가 되는데, 이런 것을 두고 흔히 ‘증발되었다’고 말한다. - p32

“빅 브라더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몇 입방 센티미터의 해골 속 외에는 자기 자신이란 것이 없었다.” - p42

“매일 매순간 과거는 현재의 것이 되곤 했다. 이런 식으로 당이 예언한 모든 것들은 문서상으로 증명되고, 그때그때의 필요에 맞지 않는 기사나 의견은 기록에서 영구히 삭제되었다.” - p59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 p236

“우리 사회에서 현재 어떤 일이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가장 모른다.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착각을 많이 하고, 지식이 많으
“기억 속이라.. 좋아. 우리가, 즉 당이 모든 기록을 지배하고, 모든 기억을 지배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를 지배하는 것이 되겠군. 그렇지 않나?” - p346

1984, 조지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