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17

<김경욱> - 문학동네  \10,000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 손에서 벗어나 혼자 길거리를 헤매다 발견된 경험이 있는 나는 ‘위험한 것을 피해라’와 같은 식의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위험한 곳에 가지마라, 위험한 사람 따라 가지마라 등등.. 무수한 걱정들로 인해, 나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위험한 것이 도처에 깔려있는 곳으로 펼쳐졌다. 하지만, ‘위험한’이란 녀석의 함정은 참 묘하다. 아무리 평범한 물체라고 할지라도 위험한 이라는 수식어만 붙으면 더없이 매력적인 것으로 둔갑한다. 분명, 경계를 해야 할 것이 마땅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판도라의 상자마저 열어버린 호기심이란 녀석이 그 경계를 무너뜨린다. 위험한 세상에서 ‘위험한 것’의 마력은 그 존재를 한없이 특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위험한 마력이 독서에까지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위험한 독서라니.. 초등학생까지 마음의 양식이라고 알고 있는 독서에 위험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이유가 존재하는 것일까? 문득, 곰곰이 생각해본다. 독서로 밤을 지새우고, 독서에 의해 고립되고, 번뜩이는 문장을 적고 싶은 창작의 고통으로 시달리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 우리는 참으로 위험한 것에 빠져있던 것은 아닐까..?

 비록, 독서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독서를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천년여왕’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태양 아래 새로운 글을 창조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들에 몰입하게 되고, 자꾸만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찾게 된다.

 하지만, 독서에 빠지는 이유가 글의 참신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태양 아래의 것들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작가에겐 족쇄와 같은 소재의 한계라고나 할까.. 참신함이라는 장대로는 높디높은 한계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정되어 있는 소재를 가지고,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상태에서 쓰인 글이 왜 우리가 읽게 되면 한없이 밝은 빛을 발하는 것일까? 독서에는 태양 아래의 것 외에도 태양 너머의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책에는 독자에게 남겨진 빈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 공간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우면서 책을 읽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평소에는 눈치 채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독서는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읽는 단계로 발전한다. 독서란 행위가 방대한 분량의 자신을 읽는 행위로 발전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항상 새로운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엘리베이터 속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오싹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자신의 모습을 그토록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익숙지 않은 그 모습과 1대1로 대면하는 그 순간, 이름모를 오싹함이 엄습한다. 독서를 통해 자신을 마주하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자신을 읽는 과정에서는 우리를 포장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결점과도 고스란히 마주하게 된다. 익숙지 않은 자신의 빈칸을 가차 없이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무방비한 독자에게는 참 위험한 일이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는 나를 포함한, 많은 무방비한 독자들에게 날카롭게 다가온다. 조금 엉뚱하고 해괴하지 않나 싶으면서도(고독을 빌려주는 회사, 맥도날드 테러 사건, 달팽이를 삼킨 남자 이야기 등등) 현대적인 감각, 세련된 문장들에 의한 디테일적 요소들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여겨 볼 점은,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빈칸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올바르지 못한 독서 중독으로 허덕이고 있는 미숙한 독자를 위하여, 그는 독서 치료사를 자처하며 거리낌 없이 자신을 읽을거리로 내 놓았다.

 지금, 그는 부담 없이 자신을 읽어달라고 말한다. 독서로 인해 독자가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아! 독서의 마력은 자신의 빈칸을 마주하게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채워나가는데까지 미치는 것이었던가! 독자여, 더 이상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독서로 인해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부족함을 채워나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꾸준한 독서는 빈칸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그것을 마다하고 빠져들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부담 없이, 글자 하나하나까지 즐기자, 위험한 독서를!

“고통은 심리치료의 시작이고 쾌감은 심리치료의 끝이다. 독서로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를 두려움 없이 똑바로 바라보게 할 수는 있다.” - p16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처음’이라 이름붙이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따라서 모든 처음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마지막’이다.” - p19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니 과거는 현재의 미래다.” - p20

“책에는 독자가 메워야 할 수많은 빈칸이 존재한다고. 독자가 그것을 채우기 전에는 모든 책이 본질적으로 미완성 원고에 불과하다고.” - p33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든가 모든 책을 다 읽든가.” - p88

“사랑하는 자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감출 수 있지만 사랑받는 자는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다.” - p108

“적을 갖되 증오할 가치가 있는 적을 가져야 한다. 경멸스러운 적은 갖지 말도록 하라. 너희는 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적의 성공이 곧 너희의 성공이 될 것이니.” - p114

“소년은 슬픔에 빠진 자신을 사랑하면서 슬픔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슬픔에 빠진 자신을 사랑 p156

“열정적 사랑은 찰나의 것이지만 영원을 보여주기 때문에 위험하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눈을 감는 것은 영원에 눈멀까 두렵기 때문이다.” - p162

“독서는 위험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니까. 가차 없이 돌아보게 하니까.” - p292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읽는다. 희망에 들뜨지 않고 절망에 굴하지 않고.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들은 대개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을 견뎌낸 어떤 것이기 마련이니까.” - p292

김경욱, 위험한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