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내 모습을 떠올리면 처량해져. 몸이 안좋아 맞았던 약의 부작용으로 엄청나게 부었던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지. 여드름이 심해서 별명이 '올해도 풍년일세'였다. 여드름 풍년 말야. 얼굴이 너무 부어서 쌍꺼풀은 온데간데 사라졌는데 나는 내 얼굴이 그토록 처참한 줄 모른 채 중학교 졸업사진을 찍은 후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어. 내 얼굴은 같은 병원 대기실에 있던 어떤 꼬마의 얼굴처럼 푸석푸석하게 부풀어올라 있었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지고 오롯이 내면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지. 얼굴을 들고 거리를 걸을 수 없었어. 이런 괴물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단다.  고등학생이 되어 천성이 밝았던 나인지라 푼수처럼 굴며 애써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내가 아픈 건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해서 벌을 받는 건지로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착하게 굴어야 한다고 믿었어. 그때 나는 착한 사람 컴플렉스가 있었던 듯 해. 괴물이 마음까지 괴물이 되면 사람으로서 끝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공허와 외로움이 나도 모르게 어두운 장막을 쳤는지 나와 그리 친하지 않았던 반친구가 내게 '넌 겉으론 밝은 척 연기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한 듯 해'라고 말했을 때 뒷통수를 세게 맞은 듯 충격을 받았지.

  몸과 마음이 비참해질 때 사람은 죽음에 대해 쉽게 생각한단다. 매일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하늘을 저주하기도 했었지. 죽음과 삶, 긍정과 부정,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의 이중성과 또래집단의 잔인함을 뼛속깊이 경험하고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었지. 마음의 밑바닥을 만진 적 있니? 밑바닥인 줄만 알았는데 나를 빨아들이던 질척한 늪같은 어둠을. 지구에서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이가 한명만 있다면 나를 구해주는 동아줄일 되었을텐데 내가 느끼기에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어. 네가 내 이야길 듣고 있다면 너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생명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어찌됐든 아무래도 중,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이 성숙했던 시기일지 싶어.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을 겪은 나는 부쩍 성장해 있었지. 나는 아픈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진짜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아픔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큰 걸림돌을 마주할텐데 그때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멈춰 서 있고 누군가는 도망칠거야. 어떻게 나아가고 멈춰 서 있고 도망가는지는 각자의 선택일 테야. 사춘기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언젠가는 사춘기가 올거야. 그러니 아무래도 일찍 성장통을 겪는게 나을거야. 왜냐하먄 치기어린 행동도 어린 나이라는 방패로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나날들은 원치 않은데 타인이나 스스로에 의해 다치면서까지 억지로 넘어야 되었던 아이와 어른 사이의 모호한 경계일거야. 앞서 내가 내 이야기를 한 건, 누구나 한번쯤 성장통을 겪는다고 당부한 건 너는 이상한 외톨이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어쩌면 지루했는지도 모르겠다, 미안-

 때로는 어리다고 의견과 생각을 무시당하기 일쑤고 때로는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부당하게 대우를 받는 때가 바로 네 나이일거야. 아이와 어른의 이상한 줄타기에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할거고 무수히 많은 기로에 서 있겠지. 그 때문인지 소설 속 너희 들의 뒷이야기는 뿌연 안개 속 마냥 흐리곤 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도 나도 아무도 모를거야. 엄마를 따라 여수에서 강릉까지 간 너는 이제 엄마를, 어른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본 지 꽤 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속 클론들처럼 그저 커다란 세계의 소모품이 되었던 너는 다른 세상에서 배불리 먹고 있는지 궁금해져. 현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줄곧 강조하지만 앵무새 말처럼 무의미하게 들리는 통합이 아닌 진정한 화합과 화해를 이룬 너는 아직도 채은신지가 그렇게 좋아? 그 이후 어른들은 어색해지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 어른들이 정해놓은 정체성이 아닌 스스로의 이름을 만들어 알을 깨고 나온 너는 진짜 너를 찾아서 이제는 입술이 빨갛게 변했을까. 하얀고양이가 원했듯이 인간이 정해놓은 울타리를 벗어나 태초의 고양이의 눈을 갖고 거리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너를 발견하면 나는 반가이 손인사를 흔들테야. 헤어짐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졸업과 이별이 끝이 아님을 너는 깨달았을까? 네가 알고 있는 진실과 정의가 입장을 바꾸거나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거나 변질되거나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누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면 너도 조금은 성장했을 테지.

  성장통이 지나가면 다시 멈추는 날이 올거야.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은 늙고 사람들은 너보고 어른이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내가 아이였던 시절이 더 어른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세상에 정답도 똑같은 사람도 없으니 지금 네 시절을 맘껏 즐기렴. 행복하면 웃고 아프면 울고 그렇게 말이야- 그렇게 있다 다들 가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