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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승이란 사람은 정말 독특한 작가다. - 본업이 작가는 아니지만 이 책 <여행, 色에 물들다>를 냈으니 나는 작가라 부르런다. - 나같이 평범한 것에 안주하고 도전정신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에게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참 멋지다. 나도 그렇게 살아봤음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고들 하지 않은가. 나도 그저 솔잎이나 맛나게 먹고 살련다... ㅋㅋㅋ 현재 fridea, 강미승 그리고 ‘뿌리다’ 란 별칭으로 활동 중인 크리에이티브 에디터인 그녀는 ‘올리브데이시티’의 스타일 및 비주얼 PD이자 <ALIC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고 각종 패션 잡지에서 화보나 인터뷰 진행 및 패션이나 피처 관련 칼럼을 기고하기까지 한다니 대단히 다재다능하다. 그런 그녀가 여행을 떠났단다. 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사물들, 거리들, 가게들을 色과 연결시켜서 묶어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일에 치여 하루하루가 숨가쁘게만 살아지던 어느 날, 자기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싶어서, 삶의 여유를 가지고 싶어서 계획한 여행이었다. 그녀가 힘겨워했던 삶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확실히 이해할 순 없지만 아마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공허함이 아닐까 싶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 가운데서 지치지 않고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계속되는 요즘, 이 직장에서 내가 비전을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작가가 겪었던 일상과는 정말 판이하게 다른 일이지만 열심히 일한 만큼 만족감이나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 일에 매진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지금 내가 버티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 일을 재미있어한다는 것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는 사실 뿐이다. 직장에는 이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근무 환경이 그리 좋지 않기에 고민이 된다. 이런 답답함 가운데서 만난 책이 바로 강미승, 그녀의 여행 일기다.

그녀의 책에서는 사진이 반을 차지한다. 아니, 사진이 거의 90%를 차지한다고 해서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진에게서 느껴지는 감흥이 대단하다. 사진을 틈틈이 찍는다고 하더니 대단히 감각적으로 찍은 사진을 열 가지 色으로 나누어놓았다. 각각의 色을 작가만의 감성으로 표현해놓은 것도 감각적이고 음미할 만한 건더기가 있다.

Blue

모든 걸 포용할 듯 친근하지만 쉽게 잡을 수 없는, 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컬러.

꼭 하늘과 바다처럼 가끔은 너무 차디차지만 술렁거리는 마음에 안정제가 된다.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컬러를 가까이 둘 것.

그 순간 느닷없이 평화가 찾아올테니.

Green

파릇파릇한 새싹, 기지개를 켜는 봄,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처럼 젊음이 파닥거리는 생동의 컬러.

어느 하나에 치우침 없이 사랑, 불만, 긴장 등 모든 감정의 균형을 조율하는 박사다.

특히 절망으로 체념한 마음에 희망의 싹을 틔어준다.

Pink

눈부신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천박한 허영심을 드러내는 컬러.

세기의 아티스트나 아웃사이더가 애착을 가졌던 이유는 일상과 별개인 판타지의 벼랑으로 끌고 가는 매력 때문이다.

사랑을 품은 빛깔이라서 그럴까.

핑크는 때로 외로움을 달래주는 연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Orange

친숙하고 충족된 기분이 드는 따듯한 컬러.

접혀 있는 걸 펼치는 기술을 갖고 있다.

방 안에만 콕 박혀 있고 싶은 우울한 마음일 때도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명랑한 기운을 샘솟게 한다.

똑떨어진 입맛에도 군침을 들게 만든다.

Brown

어디에나 있지만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 그대로의 컬러.

무작정 기대고 믿어버리고 싶은 그 안락함에서 너무 가까워 잘 챙기지 않은 벗이 떠오른다.

왠지 안절부절 못할 때 주변 환경을 브라운 컬러로 꾸미면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Yellow

오, 솔레미오(O, sole mio)! 태양과 빛을 표현할 수 있는,

찬란함에 가장 가까운 컬러다.

무게감 없이 명랑 발랄한 기운이 마음을 붕붕 띄운다.

질투의 화신이기도 하지만, 그 낙천적이고 유아적인 성격 때문에 긴장감은 빼고 자신감을 더하는 등식의 마법사.

Violet

빨강과 파랑의 조합,

늘 대립되는 두 가지 성향의 교집합적인 컬러.

감정과 이성, 감각과 정신 사이에서 시소게임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마니아적 성향이 강해 튀고 싶어 하는 자유분방함을 의미한다.

뭇 아티스트들이 가진 특이한 상상력이 탐날 때 곁에 두면 매력을 발산할 색.

Red

달거나 독하거나. 빨간색은 극과 극을 동시에 상징한다.

사랑과 증오, 열정과 희생, 건강과 타락 등, 이것 아니면 저것을 나타내는 과단성.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붉은색을 보면 아드레날린이 콸콸 쏟아져 나와 소금에 푹 절여진 듯 힘없는 이에게 싱싱한 활기를 심어준다는 것.

White

절대적이면서 순수한 컬러. 그래서 왠지 빈틈없이 싸늘한 삭막함도 존재한다.

몸과 마음에 몹쓸 패배감이 들 때 가볍게 툴툴 털고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일까?

역사상 시작과 부활은 늘 흰색과 함께했다.

Black

유행과 무관한 영원함을 나타내는 컬러.

영원한 젊음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디자이너나 트렌드세터에게 환영받는다.

스스로 분명한 캐릭터가 없다고 생각할 때 블랙은 자기만의 비밀스런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흥분을 단숨에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

일단 내 인생의 복잡함은 내려놓고 그녀의 여행 속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나니 정말 색색으로 둘러싼 일상 속에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꼽은 것은 Green편에 있는 녹색 병을 찍은 모습이었다. 작가가 그 병을 찍으면서 누군가에겐 하찮은 쓰레기가 다른 누군가에겐 너무 소중한 보물이 되기도 한다는 그 말에 내 마음이 꽂혀 버렸다. 그녀에겐 소중한 그 병을 보면서 그 녹색 병은 나에게도 소중한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아마도 그렇게 추억은 만들어가지는 것이겠지... 나의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앎의 과정 속에서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내 일상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사실은 따지고 보면 나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이상한 장남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것들은 값어치는 전혀 없지만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해줄 소중한 물건들이기에 십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으니 바로 이런 게 인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