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자립기금대출) 운동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인지 중남미인지는 모르겠는데 담보를 제공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가 없어서 당장 생계의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운동의 일환으로 무담보로 자립할 수 있는 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료수 장사를 하든 염소를 키워서 팔든 자기가 빌린 만큼의 돈을 갚으면 다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는 자격을 주어 더 큰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인데 이것으로 200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한 말이 인상깊다.

“돈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은행들은 부자들에게는 돈을 쉽게 빌려 주고, 정작 가난한 사람들은 외면할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없으면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밑천이 있어야 장사를 하든 음식을 팔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밑천조차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이 없으니 장사를 할 수가 없고 돈이 나올 구멍이 없으니 살기가 막막해져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고 그들의 자식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가서는 계속 악순환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기본적인 금액을 무담보로 돈을 빌려준다면 자립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작정 기부를 하기보다 사업자금으로 준다면 자립심까지 생길 수 있어서 일석이조가 아닐까.

이런 것을 처음 생각해냈던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그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 이 누굴지 생각해보고 그 “사람” 에게 더 집중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풍족했던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오셨던 양친이 계시고 의지할 수 있는 형제들이 있었기에 별다른 어려움없이 이때까지 살아왔다. 그래서 아예 비빌 언덕이 없이 살아온 사람들을 알지도, 만나지도 못해서 이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직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내가 처한 현실이 아니었기에 심각하게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볼 마음을 먹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고부터 정말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구나. 나도 풍족하게는 살아보지 못했지만 나보다도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걸 생생하게 느꼈다.

남편이 배신했거나 아프거나 갑자기 죽어버려서 아이들과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엄마들도 있었고 장애인으로 태어나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악을 쓰며 버텨온 남편도 있었고 자기 꿈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살아온 분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사회연대은행에서 그들의 인생 여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라고 대출을 해주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그런 대출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되신 분들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부모님 잘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뭔가 불성실해서 가정에 불화를 가져다 주는 부모님을 만나더라면 조금쯤 더 힘들게 살아왔을 인생일 텐데 화목하고 성실하고 기본에 충실한 부모님들을 만나서 내가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답답하고 고루하게만 보였던 부모님이 사실은 원칙대로 성실했던 것이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고 미안하고 행복했다. 역시 인생은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그 맛을 아는 것처럼 살아있을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