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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산다는 것>(크리스틴 폴, 죠이선교회)을 읽고

내가 진실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 것은 그래도 다행히 가정에서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처음 영어를 배웠을 때 무슨 재미가 그렇게 붙었는지 학교를 다녀오면 어머님께 미주알고주알 그날 배운 것을 일러주었다. “하이! 하와유?” 그러면 엄마는 “파인, 땡큐. 앤유?”하는 거야! 하면서 오히려 내가 배웠던 것을 어머니께 가르쳤다. 그렇게 나는 우리 가정 속에서 내 속의 것들을 어머니께 말하는 것의 즐거움, 진실됨을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배웠다. 그런데 그러한 진실됨의 공동체가 깨진 것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였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기 전 봄방학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한 친구를 바라보다가, 그 친구에 비하면 뭐 하나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중학교에서 속칭 인정받으려면 첫째 싸움을 잘하든지, 둘째 공부를 잘하든지, 그것도 안되면 운동을 잘하든지 해야했다. 나는 반에서 성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 친구에 비하면 어느 것 하나 그 친구보단 잘난 것이 하나도 없게 보였다. 그러한 생각에 갑작스레 비교의식으로 인한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삶에 대한 비관과 우울증, 무력감이 찾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입맛도 없고, 힘도 없어져서 하루는 “엄마 나 죽고 싶어…” 라는 체념의 말을 쏟아놓기도 했다. 몰랐다. 그 때는 엄마가 어떤 반응이라도 할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찌해야할지 모르셨던 것 같다. “그래… 도열이가 뭔가 많이 힘들구나. 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하고 받아주시기를 바랬는데, 어머니는 묵묵부답 놀라셨어 그러셨는지 아무런 반응을 못하셨다. 그것이 반응이었는데 나는 그 반응이 싫었다. 그렇게 일주일여를 반복적으로 무기력에 젖어 있었다. 아침 밥상 앞에서 나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나의 자존감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그 마지막 버팀목이라고 여겼던 어머니마저 도울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무력하게 했다. 그 때 내 마음에는 신뢰 공동체가 무너졌다.

다행히 그 이후 나는 진실된 공동체를 만났다. 대학교 때이다. 시원한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 선교단체 동기들과 선배들이었다. 자신들의 속내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이들, 내 고민들을 들어주는 선배들이 생겼다. 신뢰가 부족하고 소심했던 나는 그러한 맘도 들킬세라 조심조심 나의 고민들을 안들키며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동기들은 하나하나 자신들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었고, 그것들을 받아주는 선배들의 듬직한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나의 마음은 누그러졌다. 아니 활짝 열렸다. 진실한 공동체의 사랑과 배려 덕분에 나는 말씀 앞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었고,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놀라운 자유함 또한 누렸다. 1학년 2학기 선교단체 소그룹 모임 때 리더 누나의 이야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도열아, 너는 실존주의적인(!) 사고에 상당히 젖어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을 잘 벗어나면 좋겠구나~” 이런 어려운 말에 놀랐다기 보다는 나의 어떤 모습을 정확하게 찔러주는, 알아봐주는, 그러면서도 용기있게 말해주는 리더의 말에 나는 고마웠다. 더 구체적인 조언들은 생각이 다 나지 않지만 그 때의 그 소그룹 모임에서 받았던 따뜻함과 예리함은 내게 충격으로 남았다. 그로 인해 나는 신뢰의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다.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렵다. 어쩌면 저자도 그러한 부분을 알기에 영어 원제가 “living into community”라고 잡은 건 아닌지? 공동체로 산다는 것이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이자, 공동체를 만들어감이라는 어감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전달하는 제목이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을까? 특별히 21세기 자본주의의 끝을 달리고 소비주의와 SNS를 통한 개인주의화된 문명의 이기를 다 누리는 듯한 이 세대에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를 누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저자는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러면서도 공동체로 들어가는 방법을 네 가지 실천적인 덕목으로 구체화시켜 제시한다. 그 네 가지 덕목은 감사로 살아가기와 약속하기와 약속지키기, 진실하게 살아가기와 손대접의 실천으로 제시한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싸가지가 없는 존재가 된다. 이 네 가지를 갖춘 이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에 이루는 자가 된다. 공동체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훨씬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접근이다. 공동체의 성경적인 모델이나 정신, 원리를 제시하는 부분에 있어서 한발 앞서가는 느낌이고, 이 시대의 고민을 감싸안은 ‘동행’의 느낌이다. 실제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목회자들과의 프로젝트 모임에서의 나눔과 자료들이 버팀목이 된 것 같다. 읽어가면서 여러 가지로 줄을 치고 좋은 인용들과, 예리한 지적들에 어디서 이런 진주를 가져왔는지 싶었다. 여전히 어렵지만 할 수 있는 원리로서 네 가지 실천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짚어내는 대목이다.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닌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 공동체는 경험하는 것이 누리는 것이다.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살아내어야 할 우리의 숙제이자 사명이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망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감사는 불평이나 질투가 아님을, 약속이란 배신과 거짓말이 아님을. 진실이란 자기기만이나 거짓말이 아님을, 손대접이란 효율성이나 분주함이 아님을 말한다. 이 네가지는 서로 얽혀있으면서도 분리되고, 또한 이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정립하면 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엮어지는지를 말한다. 감사와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는 얼마나 줄을 많이 쳤는지 빈 곳이 없을 정도였다. 작은 일에 대한 감사와 관련된 본회퍼의 묵상(34쪽)이나 토마스 아켐피스의 경구(36쪽)는 자꾸 묵상이 되었다. 감사라는 것이 곧 ‘주신 이에 대한 것’임을 말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부분(41쪽) 또한 좋았다. 감사가 소비지상주의, 분주함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안식이 있을 때 우리 속에 감사가 넘치는지에 대한 연상은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었다. 사역 중에 감사를 표할 줄 모르는 태도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역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부분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선물의 이중적인 의미에 대한 분석이나 질투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는 통찰은 놀랍다. “감사가 있을 때 우리는 과거를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66쪽) 그렇다. 감사는 공동체를 희열에 넘치도록, 은혜에 젖어들도록 해주는 하나님의 색안경이다. “서프라이즈! 디스 이즈 유어 라이프!”(Surprise! This Is Your Life!)(80쪽, 서프라이즈 영어 철자에 r이 빠졌네요)는 한 번 실천해보고싶다.

약속에 있어서는 충실함과 구분하는 점이 신기했다. “존 롤스는 약속과 충실함의 개념을 구별하면서, 약속은 일상적인 생활의 요긴한 실천이고, 충실함은 생활의 기본 원리라고 말했다.”(99쪽) 약속이 현대에 와서는 선택을 미루는 것, 즉흥성, 더 많은 선택권을 통한 자유함을 짚어내면서도 “유한한 우리의 삶에서 일부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내 마음의 비개를 걷어내는 다이어트 같은 느낌이었다. 최선을 만들어내기 위해 약속을 파기하는 잘못들과 소비자적 사고방식으로 인한 관계가 아닌 거래로 약속을 만들어버리는 현대인의 치부 또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공동체에 개인의 마음이 떠났을 때의 처방(119쪽)에 대한 세밀한 조언은 “그렇지!”하고 안도하게 해주었다. 유연성과 분별력을 통해서 때로는 배신과 충실함의 한계 또한 지어줌이 좋았다. 이러한 원리로서 ‘인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다. “인내를 거부하는 성급한 목회자는 노천 채구을 하는 광부와 같다. 즉, 최소의 비용으로 원하는 것을 얻은 후 다음 장소를 찾아 떠나는 탐욕스러운 약탈자다.”(유진 피터슨) “공동체 생활을 오래 할수록,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그들과 끈기 있게 사는 것을 배우는 일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을 갖고 통찰력과 충실함으로 귀를 기울인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문제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다른 문제가 늘 생겨날 것이다!”(155쪽) 나원참~! 참 어렵다. 그래도 인내의 열매를 따고싶다. ^^

진리로 충만한 삶에 있어서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로 인해 앞 부분에 비해서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약함과 악함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에서는 여전한 예리함이 놀라웠다. 의사소통과 관련해서 EQ에 대한 지적이나 예언난사, 침묵의 유욕성에 대한 언급은 배우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진실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누설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묵함과 분별력,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사생활과 감정에 대한 존중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을 다스리게 된다.”(193쪽)고 했다. 그래, 참 나에게 필요한 말이구나 싶다. 더 큰 진실을 위해서 새로운 틀을 씌우는 것(198쪽)은 우리의 사역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해주는 쌍안경이다. “우리는 우아함과 거룩함을 혼동한다”는 말로 죄에 대한 완곡어법과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을 주의해야함 또한 잊지 않고 짚어준다. “진실을 사랑하는 공동체는 침묵의 지혜를 이해한다”(219쪽). “진리를 사랑하는 공동체는 고백과 용서와 치유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든다”(221쪽). 진리는 사랑과 함께 가야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손대접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대함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으로 다룬다.(232쪽) 손대접이 가진 전통과 그 의미를 성경과 연관해서 다룬 이후에 미로슬라브 볼프의 말을 인용한다. “하나님 은혜의 한가운데 새겨져 있는 원칙은, 우리가 은혜의 행위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을 때에만 은혜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진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설령 원수라 할지라도 그들을 그 안으로 초청해야 한다.”(239쪽) 그의 말에 울림이 있다. 현대 문화가 가진 효율성과 분주함은 더디게 이루어지는 관계 속의 신뢰로서의 손대접을 상실케 할 수 있다. 또한 손대접이 사역으로서 프로그램화 될 때 우정을 놓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손대접은 이미 다른 책으로 나온 부분이 있어 빨리 접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저자의 다른 책으로 메워보자. 환대하는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우리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러한 환대하는 공동체 되길 소원한다.

우리는 개인주의화되어가는 현대 자본주의 속 소비주의 패턴 속에 살아간다. 동양이 가진 공동체주의가 허물어져버렸지만 그러함에도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에 실현하는 장이다. 우리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이 세대 속에서 하나님의 대안인 공동체로 살아갈 것인지, 우리 역시 세속의 이기주의화된 개인주의자로 살아갈 것인지를 두고 씨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왕 이렇게 산다면 공동체로 살자, 진실한 공동체 속으로 진입하자~! 더 적극적으로, 지혜롭게, 헌신함으로 함께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가자. 좌절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한걸음 한걸음 그 결실을 누려가고 싶다. 그게 이 책 저자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녀의 따뜻하고 세밀한 조언에 귀를 기울여본다. 등을 토닥여주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런 분이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