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눈에 낯익은 표지였다.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오랜 기간 자리잡았던 탓에 눈에 익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검색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생이 '추천하는 책'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책을 빌리기 위해 방문했던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재밌는 책' 이라면서 읽어볼만하다고 권해주었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책인것만 같았다. 그녀가 '조선의 마지막 황녀' 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근현대사라는 과목을 좋아했고, 현대사에 나름대로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그녀는 고종과 양귀인 사이에서 탄생한 딸이다.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고, 의지 할 곳이 없고 믿을 사람 하나 없어 외롭던 고종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옹주'였다. 한 나라의 왕이 데라우치 총독의 앞에서 춤사위까지 선보이고, 자신의 시종인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을 옹주의 베필로 삼으려 했다. 그는 옹주만큼은 황적에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의 계획은 무용지물 되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종이 승하하고, 큰 슬픔으로 낙담하던 옹주는 '덕혜'라는 이름을 받고 황족이 되어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그녀는 유모와 함께 마을에 나갔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혀갈뻔한 한 아이를 구해주며 데려와 자신의 시종으로 삼는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바로 복순이다. 유모의 곁을 떠나 의지할 곳 하나 없던 일본에서 옹주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사람은 정성스레 진심을 다해 그녀를 아끼고 위로하며 곁을 지켰던 복순이었다. 조선에서 덕혜옹주의 생각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던 양귀인은 신문을 보고 옹주의 결혼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에 대한 충격으로 양귀인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머니마저 잃게 된 옹주는 쉽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에는 일본인 다케유키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다케유키의 배려와 친절에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케유키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렇게 '정혜 혹은 마사에'라는 예쁜 딸을 얻게 된다. 그녀는 끊임없이 딸에게 조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케유키는 딸에게 마사에라 칭한다. 나이를 먹고 학교에 가면서 조선에 대한 근본의 정신이 없었던 정혜는 일본인 동급생 친구들의 놀림을 한 몸에 받아야 했고, 그에 대한 불만은 그녀에게 화살로 다가왔다. 결국 그녀는 딸이 혼절한 틈을 타 몰래 조선으로 도망 가려는 만행을 저지르고, 자살 시도까지 감행하게 된다. 이에 지친 다케유키도 그녀를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그녀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진다. 조선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다가 박무영(김장한)의 도움으로 조선으로 건너오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지내던 조선의 마지막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생을 마감해야했던 고종의 생애도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동안은 그 시대를 살았던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뻘의 분들이 안타까웠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한 나라의 왕으로, 왕녀로 살아갔던 이들의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되니 더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그토록 힘이 없던 시기였던 때를 되돌아보니 참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나라를 잃은 채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남편에게조차 외면 당하고, 자식에게조차 상처를 받아야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는 읽어나갈 수 없다. 문체는 쉬워서 술술 잘 읽히지만 읽을 수록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소설을 놓지 못하고 자꾸만 손이 가는 이유는 무얼까. 마음 속으로 같이 분개하고 이를 갈면서 그들의 생애를, 안타까운 삶을, 잠시나마 엿보며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작품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동안 조선의 마지막 이야기에 대해 무관심 했었는가를 생각하니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이 작품을 통하여 이렇게 다시금 그녀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