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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자마자 무척이나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시원시원한 하늘 색 배경의 책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상큼한 느낌의 여자가 표지에 있다.

다소 두껍고 중간에 약간 지루해질 때면 이 책의 표지가 책을 읽고 싶도록 한껏 더 힘을 주었던 것 같다.

처음 이 책의 작가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당연히 감수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여성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굉장히 핸섬하고 유명한 명성에 비해 다소 어린 서른 대의 남성 작가였다.

이마저도 신선한 출발이었는데, 프롤로그도 굉장히 독특한 시작이었다.

‘톰’이 어린 시절, 친구의 아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글을 구상하여 힘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그런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으로 내어 출판한다. 그렇게 ‘톰’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프롤로그는 그런 톰에게 그의 팬들이 보낸 메일과 그에 관한 세계의 기사거리를 통하여 그의 현재의 위치를 드러내준다. 오로라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와 사랑을 나누던 톰은 그녀와의 이별에 매우 힘들어하면서 인생을 포기한 듯이 세상과 단절하여 살아간다. 그런데 그의 평생의 절친한 친구인 밀로와 캐롤의 힘으로 약으로 버텨가며 간간히 삶을 지탱해가던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이겨낸다. 정확하게 말하면 ‘밀로가 꾸며낸 한 여성으로 인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이 쓴 책 속에서 나왔다는 한 여성이 어느 날, 집 안으로 불쑥 찾아 들어온다.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릴리와 밀로의 멋진 명품 연기에 톰과 함께 나도(독자들도) 하나 같이 깜박 속았다. 그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처음에는 의심을 하면서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해했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워 마다 않는 그녀를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녀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톰이 글을 써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그녀를 위해서 그렇게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재기를 성공하고, 쓰다 말았던 작품을 멋지게 완성시켜 세상에 그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준다. 톰과 캐롤의 중간 중간 등장했던 그들의 과거이야기는 생각보다 흥미 있었다. 과거 어두운 경험을 했던 캐롤을 위해 톰은 그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이 만든 소설을 들려주었고, 그것으로 인해 캐롤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며 힘을 얻게 된다. 당연히 빌리와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던 러브라인을, 캐롤과 함께도 괜찮지 않은가하며 기대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친구로서 남을 때 서로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1992년. 스무 살. 두 사람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은 것이다. 어쩌면 풋내기 그들의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톰은 캐롤이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처음으로 살인이라는 것을 시도하게 된다.

그 후, 캐롤은 경찰이 된 뒤, 몇 십 년이 흐른 뒤에야 뒤늦게 그 때 자신의 양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톰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그 고마움을 마음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여자친구, 애인사이를 뛰어넘는 톰과 캐롤의 우정을 보면서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그런 이성친구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작가가 남자라서 그런지 톰과 밀리에 대한 묘사가 살짝 안타까웠다. 구질구질하고, 연애의 실패로 인해 세상의 문을 닫고 살고 있던 유명한 한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되어서인지 실은 그다지 호감이 가는 주인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로와 캐롤의 세 사람의 변치 않는 우정에 대해서는 가히 감탄할 만하게 정말 멋있었다. 서로가 있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아팠던 시점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빌리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게 끝이 나면서 무언가, 무척이나 아쉬웠었다. 그런데 영영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던 톰과 빌리와의 관계에 그런 비밀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이었다. 또 이 책의 반전도 정말 놀라웠지만, 마지막 결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역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와의 이야기답게 작가의 사인회에서 이루어졌던 릴리와 톰의 재회. 이 책을 덮으며 문득 전에 봤던 영화 하나가 생각이 났다. <타인의 삶>. ‘작가라는 직업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구나’라고 느꼈던 아직도 생각하면 감동이 이는 마지막 장면. 이 책의 결말도 그 영화처럼은 아니었지만 정말 무척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끝으로 이 책의 캐릭터들을 머릿속으로 하나 둘 떠올리면서 작가가 이번 작품에 있어 얼마나 캐릭터 묘사에 힘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가 하면, 캐릭터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이미지가 궁금하였다. 특히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가 사랑에 빠졌다던 빌리에 대한 묘사는 과히 얼굴이 궁금할 만큼 아름답고 발랄한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이 책이 몇 년 후에 영화화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