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다. 피아노 선율과 여백의 미가 말이다. 뭔가 부족한 듯 고요하면서도 채워주는 느낌이 있다. 고요함이 주는 안락함. 고요함도 또 하나의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뮤지션이 바로 우리의 빌 에반스이다. 아시다시피 그는 평생 우울함을 안고 살았다. 약물에 빠지기도 했고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그런 기질과 상황이 그를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나타낼 수 있도록 이끈 것은 아닐까. 잔잔한 음악이 큰 파도처럼 밀려 오는 느낌이다. 그는 확실히 좀 더 다른 음악을 원했다. 재즈의 새로움을 불어 넣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양한 음악을 듣지만 이토록 고요한 것은 별 흔하지 않는 표현일 것이다. 빌 에반스의 수많은 재즈 음반은 항상 깊은 운율을 남긴다. 우리의 가슴에 말이다. 빌 에반스가 누르는 건반은 같은 피아노라도 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도 라는 음계를 눌르더라도 그 음의 감흥이 다르다. 그 정도로 그의 정신을 온전히 피아노 건반에 담고 있는 것이다. 참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재즈라는 자유로운 음악 안에서 그는 자신을 온전히 담아 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빌 에반스는 재즈 피아노 계의 성경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당연히 있는 것이다. 이 앨범을 즐기고 있노라면 왜 그가 오늘날 그렇게도 유명한 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