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이 책은 사와다 이사오(澤田勳)교수의 흉노 – 고대유목민족의 흥망, 1996년 초판1쇄, 2004년 초판 7쇄를 완역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표현한 옮긴이의 글에서 한 문장을 먼저 인용해보자.

“무릇 모든 존재의 시원을 찾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리라. 씨실과 날실로 짜여진 직물에서 시작과 끝을 찾는 것처럼 그 작업은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모든 민족의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꼭지점은 늘 신화라는 모호한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다.

여느 민족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목민의 시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단지 북아시아(또는 중앙아시아) 유목국가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바로 ‘흉노’이고 그런 의미에서 흉노의 역사는 의미심장하다 하겠다. 안타깝게도 고대 유목민들은 그들이 영위했던 삶의 특성상 고유의 문자를 가지지 않았으며 기록 또한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일찍이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던 정착민들의 기록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이자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유사 이래 기록화된 역사는 헤게모니를 장악한 역사의 주체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역사의 주체들은 늘 자신들 밖의 세계를 타자(他者)로 분류하여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본의 아니게 타자의 역사를 왜곡(歪曲)하고 폄훼(貶毁)하여왔다. 동일자(同一者) 즉 역사의 주체의 언어로 씌여진 역사의 이면에 가려지고 은폐된 타자의 역사, 그 역사의 여백을 최대한 온전하게 읽어내고, 할 수 있는 한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야말로 오늘날 역사가에게 주어진 막중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240페이지)

흉노(기원전 3세기~460년경) à 선비(93년~2세기) à 유연(4세기~555년) à 돌궐(552-747년) à 위그루(742-848년) 그리고 마지막 유목제국이라 불리는 몽골(1206~1368년)로 이어지는 유목민족정권의 되는 흉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

흉노가 동양사 또는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

저자에 의하면 “흉노는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유목정권으로 그 성격은 이후의 유목사회사를 연구하는데 하나의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178페이지)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사에서 유라시아 내륙의 유목민족만큼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는 민족도 없는 것 같다. 그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앞서 언급했던 유럽인들이 유목민들을 야만시 한데 기인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라는 현실을 바탕으로, “오늘날에는 유목민을 무시하고는 세계사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중앙아시아 연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에 이 책은 흉노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흉노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편, 그것을 통하여 유라시아 내륙의 유목민이 세계사에 기여했던 역사적 의의를 밝혀보고자 한다.”라는 메시지로부터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흉노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중국의 지배층들은 이적을 금수와 다름없이 여겼는데 이러한 관념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노예제와 관계 있었음에 틀림없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으나, 흉노의 노(노)자가 노예의 의미로 붙여졌다는 것이다. 당시 전국시대 혼란의 와중에서 북방으로 도망치는 노예가 다수 출현했는데, 이것이 하 왕조 내부 투쟁에서 패한 사람들과 결부되어 앞서와 같은 전승이 성립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21페이지)라고 설명을 하고 있으나,

저자와는 다른 의견을 보이는 학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즉

“흉노의 원음과 어의에 대해서는 제설이 있지만 시라도리 구라기치(白鳥庫吉)는 흉노의 원음이 Huna 혹은 Hunna일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하고 있는데, 박원길교수는 소그드문서의 표기(Hunna) 및 고구려의 부족명이 ~那(나), ~奴(노)로 끝난다는 점과 한역(漢譯)시 모두 ~部(나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추정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마니즘>, 17페이지)

중국 학자는 “흉노라는 단어의 의미는 국내외 많은 학자들의 해석이 있으나 지금까지 아직 정론이 없다. 현재까지 나온 의견으로는 “사람(人)”, “이리(狼)”, “강력(强力)”, “인민(人民)”, “군중(群衆)”, “거민(居民)”, “토민(土民)”, “태양(太陽)”, “만발(挽發)”, “결발(結發)”, “제발”, “해동(海靑)”(海東靑鹘), “용감하고 잘 싸움(勇武善戰)”, “하늘의 아들(天帝之子),” “아이(兀子)” 등의 뜻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崔明德, 中國古代和親通史, 2007년, 62페이지)

또 저자는 소위 유목민족이라고 불리는 유목이라는 것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싣고 있다. 한번은 곱씹어 볼만하다고 생각된다. 과연 유목이라는 것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종래 유목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축을 제어하면서 몰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이마나시 긴지씨의 저서 <유목론 그 외에> (1995) 가운데 서술되어 있듯이, 그는 내몽골에서 유목민과 가축의 실태를 관찰하던 중 지극히 불합리한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다른 장막이 떠난 뒤에 이동하며, 1년에 1백 회나 이동하고, 풀이 없어지면 이동하는 것처럼 그들의 이동에는 합리적인 배려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 불합리한 행위는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사고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가축의 습성에 부합하여 가축의 무리를 좇아 이동하는 것이 유목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고??축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멋지게 실현시켰던 것이다.” (114페이지)

그리고 유목민 사회의 특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유목민의 사회는 일종의 계약사회라 할 수 있다. 토지라고 하는 부동산의 자연을 기반으로 성립했던 농경사회와는 달이 유목이 가능한 초원지대를 찾아서 이동하는 유목민은 목초지의 정보 수집, 운수와 교역 등 경제 생활을 보증하는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요청한다. 유목사회는 이 점에서 매우 인위적인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흉노의 남은 무리가 스스로 선비라고 칭했던 것은 새로운 지도자, 즉 선비족 수장의 인솔 하에 듦으로써 목초지의 보증 및 수공예품의 분배라는 혜택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220페이지)

공감이 가는 내용이지만 왜 특정 시점에서 유목민족을 통일시킨 강력한 지도자가 간헐적이지만 주기적으로 역사상 출현했는지는 아직도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비록 영국의 역사학자인 도우손(1889-1970)은 기후와 사람의 요인을 언급하면서 “한편으로 정치적인 이유로부터 오아시스문화들의 저항이 약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야만인들 속에서 군사적 지도자(military leader)의 주기적인 출현에 의한 야만인들의 통합과 군사적 정복에 의한 지배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기후요인보단 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보다 쉽게 증명될 수 있을 것 같다.” (Christopher Dawson (ed); The Mongol Mission. 1955, ix페이지)고 했지만.

또 유목민족의 정주민족에 대한 침탈에 대해서도 경제적인 관점에서 뛰어난 설명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유목민은 자기의 집단, 다시 말해 부족과 씨족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일정한 가축을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대, 목초지의 지형, 집단의 규모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특히 양과 말의 확보는 중요했다. 가축과 유기적인 결합에 의해 생활이 유지되었던 유목민에게 인구의 증가와 불의의 재난으로 잃은 가축의 보충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가축의 증대화를 꾀하고 그에 따른 우량의 목초지를 확보하는 것은 그들이 살아가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였다.” (170페이지)

일반인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왕소군을 위시한 화번공주(花蕃公主)와 흉노-훈 동족설도 양념으로 들어가 있다.

한가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흉노의 언어에 대한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가 이 부분의 전문가가 아닌 만큼 쉽게 접근할 수는 없었겠지만. 예를 든다면 흉노라는 한자의 4~6세기경 발음이 /hoŋnhō/라는 점 즉 훈(Hun)과 발음이 유사할지도 모른다는 점. 또 소위 유목민족군주의 칭호인 선우(單于)의 고대 중국어 발음이 darwa로 몽골어의 군주를 의미하는 daruγa와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고대한자 발음은 The Tower of Babel(http://starling.rinet.ru/)에서 따옴)

끝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개설서인 만큼 흉노선우세계표 1 & 2와 민족의 이동들을 표시해주는 다양한 지도와 흉노사 연표 등을 삽입한 점은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끝>

흉노, 유목민족,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