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평범한 여행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시작은 즉흥적이었으나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해럴드 프라이씨의 순례는 편지 한 통에서 비롯된다. 몇 달 전 퇴직한 해럴드씨가 퀴니의 편지 한통을 받고 우체통 앞에 갔다가 그대로 지나쳐 걷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영국의 남쪽 끝에서 북동쪽 도시로 1,000km를 87일간 걸어가게 되는 순례의 시작은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다. 왜 그렇게 급작스러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산책하러 나가듯 가볍게 보트슈즈만 신고 나간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 모린. 회사를 은퇴한 지 얼마되지 않은 65세의 해럴드는 우체통을 지나쳐 그대로 직진해 버릴만큼 우울하고 지쳐있었던 것이다. 은퇴는 제2의 인생이라고 하지만 또 하나의 성장통을 겪고 나야지만 극복할 수 있는 인생의 한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87일간의 순례길에서 그는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현재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주유소에서 만난 아가씨, 하이킹 하는 남자와 그의 애인, 바에서 만난 사람들....평범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감하면서 그는 아내 모린과 아들 데이비드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던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게 되는 것 같다. 그는 순간순간 순례를 포기하려고 했다. 퀴니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걷고 있는 한 퀴니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추억과 새로운 만남 속에 계속 길을 걷게 된다.

 

<나무는 물속의 촉수처럼 흐느적흐느적 바람에 가지를 맡기고 있었다. 그는 남편, 아버지, 친구가 되는 일에 형편없었다. 심지어 아들이 되는 일에도 형편없었다. 단지 퀴니를 배반한 것, 부모가 그를 원치 않은 것만이 아니었다. 단지 아내와 아들과 관련된 모든 일에 형편없었던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

 

길 위에서 해럴드는 무심한 듯 펼쳐진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랑이 식어버린 아내 모린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을 조롱하고 하찮게 여긴 아들 데이비드를 생각했다.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와 뉴질랜드로 떠나버린 어머니...누구에게나 그렇듯 해럴드에게도 드러내어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아마 우체통을 지나 퀴니를 향해 걸었던 것은 자신을 품어주지 못하는 가정을 벗어날 하나의 구실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며 그는 퀴니에게 마침내 당도한다. 아주 오래 전 친절했던 해럴드를 위해 누명을 쓰고 회사를 떠났던 그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그가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편지에 적힌 몇 글자로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면서.

 

해럴드의 이 여정은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낸다. 앙상하게 말라버른 해럴드를 목욕시키고 그의 얼굴을 만지던 모린의 눈빛은 이전에 바라보던 메마른 눈빛이 더 이상 아니었다. 서로의 상처를 헤집고 들추기보다 따스하게 감싸줄 수 있는 마음. 어쩌면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르겠다. 일상을 떠난 길 위에서가 아닌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삶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순례가 아닐는지. 서로 싸우고, 화해하며, 사랑하고, 추억하는 모든 것들이 삶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시간을 타고 순례가 되어 왜 사는지에 대한 존재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