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구효서
책을 처음 봤을 때 첫인상은 ‘요즘 책 치곤 두껍다.’ 라는 것이다. 요즘 책은 거의 2~300페이지 정도인데 그것과 다르게 400페이지가 넘는다. 살짝 부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흠뻑 빠져드는 흡입력이 있는 책이다.
양장본이다. 요즘은 양장본이 대세인가? 10월 17일 1쇄 발행 후 10월 24일 2쇄를 발행했는데 내 손에 닿게 된 건 10월 25일 이니까 나름대로 따뜻한 책을 받아 본 셈이다. 양장본이 보관이 용이하고, 관리하기 편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겉표지는 어떤가? 뭔가 있어 보인다. 더 정확히 설명하면 서커스단의 묘기처럼 창틀에 발을 대고 거의 180˚로 옆으로 구부려 있다. 얼굴의 코 윗부분부터는 보이지 않아 암연(黯然) 해 보였다. 하얀 티와 하얀바지는 묘한 매력으로 보인다. 손가락은 계란을 쥔 듯 허공에서 둥글게 구부렸는데 그 손짓은 뭔가 메시지를 담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하얀색 세로로 된 글로 된 비(雨)가 내리고 있었다.
“그가 아파트를 나서면 그 앞에 펼쳐지는 아침이 고요해졌다. 그는 아침마다 산책을 했다. 고요한 아침이었다고 해두자. 느낌이. 내가 본 일본 사람 중에 그토록 수려하게 생긴 사람이 없었다.”
작가님의 이력은 멋지다.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라 한다. 더불어 서문에서는 “서정성과 탄탄한 주제의식, 재미를 겸비한 소설로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호평을 받아왔으며, 소설 양식과 문체를 늘 새롭게 실험하여 깊고 다채로운 주제의 문학으로 승화하는 우리 시대 대표 소설가다.” 라고 서술 하고 있다.
난이도로 따지면 1. 초등학생 수준 2. 중학생 수준 3. 고등학생 수준 4. 대학생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난 4. 대학생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책을 보며 이렇게 많은 단어나 사자 성어를 사전에서 찾아서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쪽 분야에 무지하거나, 무식한 것도 있겠지만, 사전이 없으면 못 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이 다른 책보다 천천히 차근차근 읽어 보게 하는 장점도 있었고, 두꺼웠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할애 된 책이었다.
다음은 이 책이 내 손에 닿기 전에 책에 대해 느꼈던 기대치와 생각이다.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 다시 말하면 알려진 부분과 안 알려진 부분. 사람들은 보이는 부분과 알려진 부분에 중요성을 높이 평가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부분과 안 알려진 부분. 쉽게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 대한 성과 말이다.
그 구분으로 인해 사람들은 색안경과 선입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보이던 안 보이던 간에 그 전체가 그 사람이 살아 온 삶과 일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자신의 뜻과 상관 없이 저항시인이 된 윤동주 시인의 삶과 일상이.
더 이상 왜곡 되지 않도록 진실 된 내면을 알고 싶다. 그건 더 나아가 우리 문학과 우리가 사는 시대보다 약간 과거였던 그 부분을 알고 싶다. 난 그래서 우리 민족의 얼과 사상을 가슴 깊이, 뿌리 깊이 알고 싶다.
별 헤는 밤 윤동주님에게는 과연 어떤 삶과 일상이 있었을까? 궁금하면서 기대가 높다.”
문법 혹은 문체의 특징은 단문이 많았고 간결했고 호흡이 짧았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느낀 점은 갑갑하고 답답했다. 막막하고 먹먹했다. 그리고 침잠. 뜨거운 여운. 마음이 무겁다. 유고는 신기하고 신비하다. 그 빛은 푸르다. 그 푸름은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고 조국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 살아 숨 쉬는 빛과 공기가 된다. 또 느낀 점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님은 자료 수집과 조사, 그와 관련된 책을 읽어 정성껏 책을 쓰셨고, 그 성의와 정성이 돋보인 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기 전에 일단 기본 정보를 알기 위해 인터넷으로 “윤동주” 검색 했다. 이건 내가 어느 정도 알아야 글의 흐름을 이해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시인(1917~1945). 북간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연희 전문학교를 거쳐 일본에 유학한 후 1943년에 독립운동의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광복 후 그의 유고를 모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되었다.
그의 시신을 하루 후에 가져갔다면 실험용으로 쓸 것 라고 했다. 이미 사망한 그의 시신이 실험용으로 쓰일 이유가 있었던 걸까. 생체실험 의혹이 커져가는 가운데 당시 윤동주와 함께 수감돼 있던 고종사촌 故송몽규는 윤동주 일행에게 '저 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됐고, 동주도 이 모양으로…….'라고 말했다고. 강제로 의문의 주사를 맞은 그 역시 3주 후 옥사했다. 생리식염수 대신 바닷물이 주입된 정황을 토대로 한다면 윤동주에게 주사된 액체 역시 바닷물일 가능성이 크다. 한 전문의는 "바닷물에 포함된 동물성 플랑크톤 등으로 인한 세균에 의해 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뇌까지 혈액이 전달될 경우 혈액이 뇌로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 때 보이는 증상이 (사인으로 거론된)뇌일혈과 같다"고 말했다.
윤동주라는 이름부터 사망된 원인까지는 인터넷 여기저기를 보며 정보를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내 글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둔다.
본관은 파평이고 아명은 해환 북간도 명동촌 출생으로써. 이름에 들어가는 “동”은 명동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 윤동주는 전면에도, 화자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스물일곱 살인 재일한국인 3세로 ‘겐타로’라는 일본 이름을 지닌 ‘김경식’과 ‘요코’라는 여인이다. 윤동주는 요코와 겐타로의 발화와 진술 이면에 등장하며 두 화자의 행동을 유도하고 사고를 유발할 뿐이다. 겐타로는 같이 아르바이트 하던 시게하루를 찾다가 우연히 윤동주의 유고의 행방을 쫓아가게 된다. 마치 친구를 찾기 위해, 친구가 찾아 나선 원고를 쫒는 셈.겐타로는 유고 원본을 찾아다니는 등 윤동주의 죽음과 유고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쳐나간다. 유고란, 죽은 사람이 남긴 원고를 뜻한다. 이 과정에서 윤동주가 썼던 언어를 통해 ‘민족저항시인’이 아닌 ‘시인‘ 윤동주를 다시 살려낸다.
소설에서 윤동주의 존재는 요코와 겐타로를 두 세계 '사이’에 위치시키는 계기 혹은 동기로서 작용한다. 겐타로가 찾는 윤동주와 윤동주의 유고는 친구를 찾기 위한 실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U의 존재, 도서 검색 아르바이트, 친구 시게하루의 증발과 의문의 서고 내 인물, 의문의 약도, 히즈하라 노파, 야쿠시지와 타케우치 마사시 등은 소설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다. 하나의 실마리를 갖고 추적하며 요코가 가진 동주에 관련된 글의 복사본을 드디어 손에 쥐게 된다. 그 즈음 마을로 돌아 온 시게하루. 그는 왜 증발했던 것일까? 시게하루의 조부와 연관된다. 겐타로가 찾았던 글은 아이누였기 때문에 일본어로 번역 될 때까지 6개월을 기다렸다. 겐타로가 본 그 글엔 어떤 내용이 숨어 있었을까? 비밀스러운 그 글들에서 내 몸은 어느새 슬픔으로 전율됐다.
이 글에 나타난 동주의 성격은 말 없고 조용하고 인사성이 밝았다. 괜한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생각대로 하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무덤에 갔을 때의 가슴 아픔이 그대로 책을 통해 전해진다. 불안한 사회에서 일본의 강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돈주” 라는 창씨개명까지 해야만 했고, 영토도 말도 빼앗겼다. 그렇기에 이 책에 나온 제목 12개는 모두 뒤에 ~말로 끝나는 지도 모른다. 그 부분은 작가님의 뒷부분 해설에도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언어/말’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소설 제목이 ‘동주’로 돼 있으나 열두 개의 작은 제목이 모두 ‘말’로 끝나는 이유다.”
이 글은 일본의 어느 기숙사에서 일어난 일도 있고 동주 주위의 사람들이 동주의 말과 행동을 보고 기록한 글도 있다. 하지만 그 시대적 배경이 일본이라서 그런지, 일본이름이나, 장소 같은 것들이 글을 읽는 내내 많이 헷갈렸다. 백지 같은 내 머리가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누가 누구 같고, 이름이 와 닿지 않아서 인지 아까 본 이름을 다시 들춰 그 사람이 했던 행동을 다시 살피고 하는 번거로움이 몇 번 걸리긴 했다. 그 만큼 이야기를 중복해서 읽는 느낌이라 나중엔 기억이 잘 났고 다시 그 사람이 이름이 나오면 그 사람이 한 행동까지 머릿속 파노라마에서 나타났다.
당시의 급우 중 문익환은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소설 속에서 느낀 동주. 처음엔 윤동주에 대해 보일 듯 안 보일 듯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자세히 서술된다. 그의 성격과 친구와의 관계, 친구 명준의 잔혹한 죽음에 대한 심리적 묘사, 묘 같지 않은 친구의 묘 앞에 그렇게 좋아하던 백석의 필사본을 놓고 가는 모습. 고향 분위기나 상황적 배경, 아버지와의 대화와 시인이 되고 싫다는 꿈. 일본 유학과 주위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그의 삶 조각조각들.
죽음 후에 지인들의 행동을 어디선가 보았다
1947년 2월 16정지용, 안병욱, 이양하, 김삼불, 정병욱 등 30여명이 모여 소공동 플로워 회관에서 윤동주 2주기 추도 모임을 갖다.1948년 1월 유고 31편을 모아 정지용의 서문으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1955년 2월 10주기 기념으로 유고를 보완, 88편의 시와 5편의 산문을 묶어 다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정음사에서 간행.1968년 11월 2일 연세대학교 학생회 및 문단, 친지 등이 모금한 돈으로 연희전문 시절에 지내던 기숙사 앞에 시비 건립.
윤동주가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는 현재 일본 고등학교 3학년 현대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주목 된다고 한다. 그의 생애와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가 생체 실험 때문이라고 서술 하고 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에서는 “별 헤는 밤 윤동주” 라고 나온다. 그 시에 대한 호기심이 문득 생겨서 찾아보았다. 그의 시가 사람들 마음속에 보석처럼 박힌 것처럼 유명한 것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작품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쓰인 시, 자화상, 십자가, 참회록, 간, 길 등이 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라는 유고 시집에 담겨 있으며 1948년 초간본은 31편이 수록 되어 있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포함하여 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리게 되었다. 특히 참회록은 창씨개명을 하고 난 후 쓴 시이기 때문에 복잡한 내면을 볼 수 있다. 창씨개명은 알려지지 않다가 1990년 후반에 알려져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본 그의 작품은 애절하고 쓸쓸하다. 서정적이고 은유적이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고, 자연에 비유할 줄 아는 애타는 마음. 그 마음이 내 가슴에 송곳처럼 파묻히는 건 왜 일까?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에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친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20. 요코의 글에 시인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한 건물에 기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9. 윤동주 요고 였다. 빛을 보지 못한 채 소실되고 만, 일본에서 쓰인 많은 시 원고들.. 그녀의 기록에 ‘동주’가 등장한다. 유고의 행방과 그녀의 글
78. 그의 눈은 저녁 어둠을 모두 빨아들인 듯, 검고 깊기만 했다.
87. 간도 間島. 사이 간, 섬 도
118. 궁금한 것이 세상의 솔방울 바나나 매실만큼 많다.
170. 하나는 동주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고였다는 점. 동주의 글을 포함해 만주와 관련된 자료의 일부가 인멸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79. 미즈하라가 인용한 글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윤동주의 유고였다는 것.
221. 더 차갑게 더 딱딱하게 얼어서 내 속의 분노가 평생 실없이 풀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233. 시인이 잡히면서 함께 압수당한 원고가 있었다고. 대학뿐 아니라 같은 아파트에서 기숙했다는 제보자의 인적 상황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243. 그녀의 글이 번역되어 나에게 전해지기 전까지 나는 윤동주와, 그의 기록과, 그것의 종적에 대해, 그의 글을 쫒아야만 했던 이타츠 푸리 카와, 추적의 이유에 대해, 그리고 시게하루의 행방에 대해, 여전히 무지했다.
272. 육신은 비록 모두 서럽게 멸했으나.
298. 시인이라면 백화가 만발한 꽃동산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니까.
318. 시인 윤동주는 이미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죽은 거였다.
342. 그들에게 시란 이념과 종교와 신분과 꿈마저 함께 아우르는 우주의 깊은 품이었다.
363. 나츠메 카즈토시라는 자의 배후에는 히다카 헤이시로라는 자가 있어. 그 뒤에는 미우라 마사오가 있지.
410. 시게하루를 추적하는 일로 시작된 거였지만 나는 이타츠푸리 카에 닿았고, 결국엔 한국어를 배워 긴 글을 남기게 되었다.
같은책 다른리뷰 | 이 책에 대한 다른 리뷰도 읽어보세요.
동주(구효서 장편소설) - 윤동주 유고와 자아발현
이전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