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려받은 것들 프레데릭 베르트랑

“1999년 볼루냐 라가치 상 수상 작가”

“책 읽는 교육 사회 실천 협의회”

“어린이 문화 진흥회 추천 도서”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책은 다양한 옷과 그것을 바라보는 빨간 머리 앤 같이 생긴 여자가 서 있다. 한 장을 넘기자 주근깨 가득한 여자아이가 바지를 쳐다보며 뿌드득 뿌드득 이를 갈고 있다. 표정이 살벌하다.

책을 읽다 그림에 “서태지 귀국”이라고 쓰인 신문을 보는 아빠를 보고 흠칫 놀랐다. 번역 작가의 센스가 돋보인다.

누구는 새 옷만 사주고 누구는 물려 입는 처지. 언니가, 이모가, 오빠가, 아빠가, 할머니가 물려준 옷은 낡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헌옷들을 입어 기분도 상한다. 종류도 다양하고 계절도 다양한 옷이지만 유행이 지났거나 하자가 있는 옷이 대부분 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아빠는 고이고이 간직하던 책가방을 선뜩 주셨다. 그건 아빠가 나 만했을 때 아빠의 아빠한테 선물 받았던 거라고 했다.

물론, 백화점에 옷 사러 가는 날도 있긴 하다. 오빠는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으며 언니는 눈에 띄게 키가 커졌고 나는…….

엄마는 다 나한테 맞고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신다. 더군다나 수선하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고 한술 더 뜨신다. 옷으로 인해 우리 집 세탁기는 심심할 새가 없이 말썽을 일으킨다. 그건 내 옷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놀린다.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만다.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래도 막내가 아니란 건 정말 다행이다. 막내의 경우는 더 심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짠 스웨터는 오빠한테 입히려고 한 건데 그 동안 너무 자라서 나에게 주었다.

난 그 옷을 동생에게 입히고 만다.

“이게 다 널 위해서야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라고!”

동생에게 말한다.

그래도 동생을 보며 안도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대가족이 난 부럽다. 어른들에게 저절로 배우는 가정교육과 형제자매들의 어울림도 더불어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 연년생 언니가 있고 밑에 남동생이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이 많은 동감이 갔다. 왜냐하면 언니가 입던 옷을 내가 물려 입고 언니는 새 옷을 입을 때 그 비참함. 아마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것도 흰 티에 김칫국물이 묻어 얼룩 져 지워지지 않거나 무릎 부분이 낡았거나 하는 등 조금 창피한 옷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난 사촌언니가 졸업한 중학교를 입학했는데 언니가 3년 내내 입어서 마치 모기장 같이 보이는 블라우스 까지도 물려 입었다. 그 땐 정말 화가 나 엄마에게 블라우스를 들고 상태를 보여 주며 울며 따졌다. 엄마가 보기에도 심각했는지 나를 데리고 가서 블라우스만 두 개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기가 죽어 있는 나 때문에 엄마는 간혹 나에게 옷을 사줬지만 언니가 입은 새 옷보다 내가 입은 새 옷이 확률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생각했다.

“내가 우리 집에 도움을 주고 있어. 나로 인해 절약하니까 아마 우리 집 가난하지는 않을 거야.”

그 생각을 지금 하니까 피식 웃음이 난다. 외동아들 하나인 난 그때의 상처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옷을 물려받지 않는다.

새 옷을 사준다. 그래서 우리 집이 가난해졌다. (웃음)

지금에 와서야 엄마의 행동이 끄떡 끄덕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난 이제야 어른이 되는가 보다.

물려 입으면 어때?

그런 게 세상 아닐까?

지인들을 꼬드겨 안 입는 옷을 달라고 하고, 지인들이 준다는 옷은 모조리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