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김수현

김수현 작가님의 애칭은 “언어의 마술사”다. 내 생각은 언어가 아니라 언변 아니 어휘의 마술사라고 표현하고 싶다.

김수현 작가님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작가님이시다. 중학생 이상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이 작가님을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란 생각이 든다.

나한텐 박경리 작가님이라 박완서 작가님 같이 포근한 인상을 가지신 분이시다. 어쩔 때는 냉철한 자기 관리 때문에 좀 안 좋은 소리를 들으시긴 하지만 확고한 정신과 그 분의 실력은 어쩐지 많이 믿을 만하다.

“눈꽃”이라는 책을 본 독자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엄마를 부탁해” 를 추천하고 싶다. 그 책들과 비교했을 때 이 책은 뭐랄까?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갖게 되었다.

흥미 있고 신선 했고 재미있었다. 또한 엄마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갖게 해 주었다. 엄마가 지금 내 옆에 계신 거 자체만으로도 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뭔가를 먹으면 메스껍고 울렁대고 니글거리고 토할 거 같고 자꾸 트림이 나왔다. 그리고 체중이 20% 정도 감량 되었다. 다소 무서운 생각이 들어 종합병원에서 거금 몇 십만 원을 투자해 종합 검진을 받았다.

내시경 검사는 꾸역꾸역 눈물 찍 콧물 찍 침 질질 흘리며 역류하는 내 기운을 어쩌지 못해, 속으로 “살려줘”를 천이백만 번 외치며 연발하다 끝났다. 혈액 검사는 그 전에 또 무슨 검사를 한답시고 피를 또 뽑은 바람에 힘이 없는데다가 혈액을 관통하느라 주사바늘이 살 속을 찌를 때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엑스레이는 그나마 무난하게 끝났고, 시티 촬영은 무슨 기계에 쑤욱 들어갔다가 나오는 걸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검사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의사 선생님의 일정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후로 예약이 잡혔다. 그 동안 난 정말 웃기게도, 아니 반대로 생각하면 웃기지 않게도 내 인생을 성찰했다.

비상금 통장은 어디에 있고, 그 통장 중에 어느 통장은 만기 되었으니 언제 찾으면 되고 어느 적금은 언제까지 부어야 만기가 되며, 개인연금은 몇 번 남았고. 하며 남겨진 사람을 위해 생각했다. 이 한 몸 죽으면 재로 남으니 남은 남편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내 아들은 최소한 언제까지 밥은 먹고 살겠다 하는 생각.

어느 이벤트에 글을 응모했는데 그 결과는 언제 나오더라? 내가 작성해 놓은 일기는 “정표이야기” 라는 책처럼 나중에 그 일기를 모와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이라든가, 그게 안 되면 “엄마의 약속” 이라는 책처럼 그 비슷하게라도 책이 나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난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죽은 후에라도 ‘내가 모와 놓은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죽어서도 한이 없는 거다.’ 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다. 아, 참! 내가 출판사에 투고 하려고 USB에 담아 놓은 글도 있지? 남편과 나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담은 책 한권 분량의 로맨스 소설이 있었고, 아들과 에피소드를 담은 에세이집도 있고, 책을 읽고 나서 적은 소감이나 느낌을 작성한 독후감상문 비슷한 것도 있었지? 라며 복잡다단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시경 검사는 동병상련이라고 만약 내가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 표현력은 정밀했고 정교 했고, “맞아 맞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 하게 되었다.

그 경험이 이렇게 매치 되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불안이 점점 치솟던 날 예약 날짜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 이상 없어요. 그러니까 약도 필요 없고요 6개월 후에 다시 오세요”

부질없는 불안에 헛웃음이 나왔다. 살이 빠진 건 예민한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쓸데없는 잡념에 육체적, 정신적 시간을 소모해서 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처음 썼던 로맨스 소설은 일인칭으로 썼었다. 근데 작가를 희망하던 지인은 말했다.

“일인칭은 제일 쓰기 힘들어.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써야 해. 일인칭은 단순하고 앞만 볼 수 있지만 전지적 작가시점은 앞뒤좌우를 볼 수 있거든?”

이라는 조언이었다.

그래서 난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내 이야기”는 일기 형식으로 내 감정과 결혼에 대한 희망과 바람을 썼고, 그날 내가 엄마한테 했던 행동과 말과 속마음을 내 느낌으로 썼다. 그리고 같은 날 “엄마의 이야기”라고 해서 현실적인 결혼과 결혼 후의 애로 사항이나, 내 말을 맞받아치던 엄마의 대답과 그 대답을 하며 했던 표정을 잘 관찰하고 엄마의 느낌으로 쓴 적이 있었다.

좀 색다르고 썩 괜찮았었다. 근데 이 글을 읽으며 아 이런걸. “나선형 이중 심리” 라고 하는 구나 하고 깨달았다.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을 두루 갖추며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가님의 문체를 보며 내 글이 참 단순 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 글이 밭에 심어 놓은 배추라면 작가님의 글은 그 배추로 맛있게 김장한 요리작품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텔레비전으로도 상영됐다고 한다. 그 사실을 늦게 알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텔레비전과 그리 친하지 못한 나는 단 몇 분의 시간조차도 그 드라마에 할애 하지 못했다. 사는 게 바빴다 라기 보다는 텔레비전과 친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님은 강약이 강하시고 스토리의 빠름과 느림을 절묘하게 표현하신다. 그 맛깔 나는 표현은 정말 맛나다.

그래서 아마 난 김장 김치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 소중함을 내 기억 속에 오래 남겨 두고 싶어 이렇게 글로 쓰는 내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다.

36. 죽음이 가장 큰 절망이라 하나 죽음은 산 것이 아니니 절망도 아니다.

48. 불쾌하게 명치가 무지룩하고 때때로 아프고 소화불량에 심심찮게 설사를 해대는 고질 위염도 나아질 것이다.

72. 내 위염 증세는 다분히 신경성이다. 아파오기 시작하는 배를 안은 채, 나는 무사히 무서운 딸년과의 사무를 마치고 내 방으로 들어가 약을 먹었다.

74. 나를 한 푼 동냥을 기대하고 있다가 거절당한 거지로 만들어버렸다.

81. 약을 또 먹어야 겠다. 닥터 민이 처방해 준 약이 요즘 별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 같다.

109. 대학병원 소화기 내과 부교수의 방이 꼭 사진현상실 같다는 게 나는 번번이 신기하다.

115. 잘 들었는데 요즘은 약이 듣지 않는 거 같다.

142. 싫어. 싫다는 건 안 해 주는 게 친구 아니니?

212. 후딱 나쁜 예감이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와 나를 보며 서는 것 같다.

217. 이건, 삼분의 이 가량이. 췌장 머리 부분에 생기는 건데, 머리 부분에 생기면 황달이 오기 때문에 발견이 보다 쉬운데……. 이 여사는 운이 나쁜 편이야. 꼬리 부분이야.

232. 상복부가 예리한 칼끝으로 휘젓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한다.

293. 나는 최근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가혹한 통증과 함께 그를 향해 치닫는 타는 듯한 열망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고함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을 넘겼다.

299. 한시라도 빨리 심장을 멈추는 것으로 내 저주스러운 암세포에게 복수하고 싶다.

308. 내 정신이 시위 떠난 화살 날아가듯 내 몸을 떠나 어딘가로 빠르게 날아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