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시민 전 장관님.

 당신의 최근 작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었습니다.

요즘 처럼 복잡한 정치상황에서 당신의 이 책은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일을 예측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의 말 처럼 지식소매상으로 좋은 물건을 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선명한 이론과 풍부한 경험이 이 책의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고 평가했던 참여정부의 리더를 만나 무엇이라 위로했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당신이 노 전대통령에 갖고 있는 깊은 인간적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어했던 일들도 작게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라크파병이나 한미FTA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태인 씨가 한미FTA 협상에 반발하며 참여정부의 통상정책을 비판하고 다닐때 (저도 그 강연을 들은바 있습니다) 당신이 정씨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낼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다는 말 "그러지 마시오. 그 사람도 자기 나름의 애국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가 진보 진영을 배신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219쪽) 를 읽고 가슴이 멍했습니다. 죽기아니면 죽이기로 밀어붙이는 현 정부의 각종 정책을 보면서 그들에게도 이 같은 마음이 있을까 하는 것이죠.

  저는 최근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읽었습니다. 그 책의 출발점은 이것입니다. 다수 대중이 왜 부자감세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에게 표를 주느냐는 것입다. 크루그먼 교수는 그 이유로 보수세력의 치밀한 각종 사회적 장치를 꼽고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보수정치권을 돈으로 지원하고, 보수언론을 통해 홍보하고, 심지어 각종 권력과 이념을 통해 대중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이 말한 후불제 민주주의는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 없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라는 한 정치인의 말이 이제는 고통과 반성없이 민주주의 가치를 유지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지난 10년은 민주주의 가치를 향해 달렸지만 우리는 아마도 빚을 다 갚지 않은 것은 물론, 새로운 민주주의 가치를 필수적으로 사야 하는 고통을 맛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책을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1부 '헌법의 당위' 는 지난 10년의 가치를 정리했다고 보여집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배우고 공유했던 민주주의 가치를 명료하게 설명했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헌법은 참으로 진보적입니다. 헌법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한 인간의 행복에서부터 한 민족의 통일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니 참으로 진보적입니다.

 2부 권력의 실재는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참여정부의 묘미와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멍터구리배'로 비유되는 법안과 국민연금법 개정안, 그리고 기초노령연금법 등은 사회제도발전을 향해 정치인이 해야 할 바의 표본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것을 정치인이 하지요. 지략과 묘수를 통해 법안이 담고 있는 가치만큼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정치력, 약간의 상처도 있지만 국민을 위해, 법안에 포함된 약자를 위해 달려가는 것이죠.

 유 전 장관님 요즘 저는 고민이 있습니다. 내년이 지방선거지만 지방은 참여정부와 같은 민주주의 정치권력 경험이 없습니다. 후불제는 커녕 구경도 못했다는 것이죠. 지방토호세력과 일반 서민들이 눈앞에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형국입니다. 지방관료는 선출직 단체장의 눈치를 보고 모든 정책이 결정됩니다. 지방 민주주의야 말로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의 토대이지만 그 길은 요원합니다. 유 전 장관님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좋은 글발을 기대합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하반기 준비하고 있는 책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