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책읽기의 기쁨을 모두 갖고 있는 <인물 소설책>이다. 

그냥 이름만 들어봤을 유명인사를 소설이라는 글쓰기 방법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게 하는 훌륭한 글 솜씨. 평전을 통해서는 만나 볼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려 박사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몸에 달고 달려온 장기려를 만나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사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이 책 '청년의사 장기려'는 그 것 이상을 전달한다.

장기려 박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간 대량전제수술을 성공시키고 특히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효시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는데, 그런 역사적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장기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의술을 펼치고, 가난하게 살아왔던 의사이기에 '의료보험조합'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책에는 천재의사 장기려는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청년과 목표를 정한 후 노력하는 청년, 그리고 달성된 목표를 고양시키고 더욱 더 사회와 인류를 위해 어떻게 실현하는 가를 보여주는 청년. 그런 평범한 청년의 끝없는 노력만 있다.

일제 강점기 말년에서부터 한국전쟁, 피난, 그리고 평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활동. 이렇게 간단하게 그의 삶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이 책에서는 시대시대에서 만난 만난 한국의 유명인사들이 있어 더욱 재미있다. 나비박사 석주명, 송도고보 윤치호 교장

선생, 함석헌, 김교신, 이광수, 심지어 조만식, 김일성까지 의사 장기려를 스쳐간 수 많은 인물들이 인상 깊게 이 책에 등장한다. 물론 소설적 장치이기 때문에 그것의 진실과 역사성은 상상속에 남겨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가 생생하다.

특히 장기려의 기독교 신앙이 김교신과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무교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재미를 더했다.

함석헌은 창씨개명에 근심하는 장기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 말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창씨개명을 한 장 선생이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 한 장기려는 나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의사라면 장기려는 나의 친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창씨개명을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지 못한 함석헌은 장기려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장 선생,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뱀같이 지혜로울 필요도 있습니다. 잠깐 욕됨을 참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길을 택하세요."

장기려가 김일성을 수술하고 끝난 이후 대사는 더욱 재미있다.

"장 선생, 고맙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소. 장 선생이 마음만 먹으면 수술사고로 위장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오."

<중략>

"아닙니다. 저는 특별히 신경 쓴 게 없습니다. 저는 그저 제환자에게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 환자가 돈이 있나 없나, 지위가 높은가 낮은가 따위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평양에 있던 장기려 박사가 목격한 한국전쟁 기간 동안 좌우익 집단의 광기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직 인간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의술을 펼친 진정한 성인 장기려가 소설가 '손홍규'에 의해 다시 부활한 느낌이다.

붉은 색의 책표지를 벗기면 하얀책표지에 '청년의사 장기려'라는 붓글씨체만 보인다. 그렇게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마치 청년의사 장기려의 의사 하얀 가운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감동을 주는 인물을 만났고, 특히 소설이라는 표현방식으로 더욱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으니 기뻤다. 지금도 어느 곳에는 이런 청년의사 장기려의 뒤를 잇는 의사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