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일 그는 참 행운아다. 아들과 함께 고민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멋있는 친구가 곁에 있으니. 정태일 그는 용기가 있다. 자신의 아픔을 솔직히 시인하고 다음 계획을 준비할 수 있으니.

 

그 20대 나는 무엇을 했나. 한참을 생각하니 나름대로  강원도를 향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초겨울 지나가는 차를 잡아 얻어타고 얼큰하게 취한 트럭아저씨와 함께 한계령을 지나 강릉시를 달렸던 일들. 어느 독서실 구석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20대를 보냈던 시절. 나는 그렇게 달렸지만 21세기 한국인 젊은이 정태일 그는 과감하게 유럽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가 부럽다.

<바이시클 다이어리>는 21세기 한국의 젊음이 어떻게 세계를 향해 고동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이 땅 한반도에서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 나의 고민을 세계속 어는 장소에서 한번 해보고 자아를 찾아가는 것. 세계속 밖에서 하는 그런 21세기 한국 젊은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64일간 정태일은 프랑스를 출발해 이탈리아 독일을 자전거로 달렸다. 자신의 근육을 이용해야만 움직이는 자전거. '빨간비닐'이라는 멋있는 이름을 부여받은 자전거는 정태일과 같은 운명이다. 보잘 것이 준비된 삶이다. 수백만원 하는 산악자전거도 아닌 간신히 조금 좋은 그것도 아버지 친구분의 도움으로 구입한 자전거에 몸을 의탁하고 서구문명의 중심지 유럽으로 가고 달리고 사람을 만난다. 굳이 자기계발을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20대 이렇게 쓰러질지 모르는 젊음이 안타깝기 때문에 미래에는 못할 것 같은 일이기에 정태일은 달렸다.

정태일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에서 그들의 문명과 도시를 만나지 않았다. 사람들, 페달을 밟아야만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 자국문화의 우월감에 도취된 사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거리에서 열차에서 그리고 자전거도로에서 만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길을 잃기도 했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어둠 속에서 프랑스 시골마을의 또 다른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전까지도 "어서 페달을 밟으라!"고 무섭게 나를 노려보던 짙붉은 암흑이 "이제부터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라"며 내 어깨를 조심스레 주물러왔다. (122쪽)

그리고 바퀴살이 왜 엉켜있는지를 통해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책장을 덮자마자 조카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이제 20대를 준비해야 하는 조카이기에 꼭 선물하고 싶었다. 결국은 모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하기에 정태일처럼 도전해 보라는 것이다. 꼭 정태일 처럼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가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해서 미래를 준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정태일은 이 책을 참으로 솔직하게 전개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답답하면 답답하다고, 아무런 생각이 없으면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유럽의 문명에 대해 사람에 대해 젊은이 특유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고, 긴장감도 있다. 독일에서 만난 일본인 대학생 미유키에 대한 감정은 후속이야기가 궁금할 정도로 애틋하다.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정태일씨에게 미유키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왜 책에 미유키의 사진을 포함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마지막 이책의 미덕은 자전거 여행에 대한 정보다.

이 책은 유럽 여행자용 서적이 아니지만 책 뒤편에는 유럽 자전거 여행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참 좋다.

오래만에 정태일이라는 젊은이를 통해 지난 20대 혼자 했던여행의 희열이 다시 솟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