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부터 ‘의료’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신의 호텔>이라는 제목의 신간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도 세계의 유명한 호텔이나 관광 서비스를 소개하는 책인 줄 알았다. 책의 표지와 작가의 이력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이야기’

 빈민 구호소 기능을 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 잠시 스쳐 지나갈 요량으로 들어갔던 의사가 20년째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된 논픽션이지만 동시에 옴니버스식 영화나 여러 편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의학뿐 아니라 사회학과 역사학을 공부한 의사의 눈으로 본 의료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이야기라면 일반적인 ‘병원 임상 사례' 정도로만 평가할 수 없다.

2.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사

“ 나는 나이 든 의사들은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면서 환자의 손을 자기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진단명이 나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나는 아주 미쳐버릴 것 같았다. (p.305)

 

"훌륭한 의사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적절한 치료 방법을 처방해준다. 하지만 더 훌륭한 의사는 약국까지 환자와 함께 걸어가준다. 그리고 제일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약을 삼키는 것을 볼 때까지 약국에서 기다려 준다. . (p.104)

 누구나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임용고사 준비로 도서관에 콕 박혀 있을 때 이야기다. 아침 7시부터 도서관 문을 닫는 밤 10시까지 휴일도 없이 공부를 하던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 먹은 것을 다 게워낸 뒤 사흘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배탈이 난 줄 알고 약을 지어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음식물이 충분히 섭취되지 않아 탈수 증상에 시달렸다. 탈수는 또 다시 어지럼증과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불러왔다. 주말동안 끙끙 앓다가 동네 내과를 찾아갔다. 어지럼증이 심해 진료실 앞 병원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대기하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일반적인 식중독 환자와 증상은 다를 것이 없으니 그냥 대충 진료를 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의사 선생님은 차근차근 질문을 하셨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어셨다.

“뭐 때문에 이렇게 힘이 들었을까...? 혹시 지금 무슨 일 하고 있어요?”

 그냥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을 뿐인데 순간 울음이 터졌다. 임용고사를 2번째 준비하고 있다고 하자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에이~ 무슨 옛날 사법고시도 아닌데 너무 부담갖지 말고 해요. ”

 그 날 처방받은 수액 때문이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나는 그냥 그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 이미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나오는 길에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이온음료 한 병을 사들고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남은 공부를 했을 정도니까. 그 뒤로도 일명 ‘고시 후유증’으로 몇 번 병치레를 하기는 했지만 그 때 그 진료 경험을 생각하면서 가볍게 넘겼던 것 같다.

나는 고작 한 번에 4000 원 남짓의 일반 진료를 이야기한 것이지만 급성질환으로 장기 입원과 치료를 요하는 환자들에게 병원이라는 공간과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이라는 사람들, 그리고 치료를 받게 하는 정책이나 서비스체계의 의미는 생명 그 자체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개방형 병동이 단순히 ‘36인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창문과 그 창무을 넘어오느 눈부신 햇살, 그리고 신선한 공기가 머무는 크고 열린 공간이라는 사실을, 혹은 개방형 병동 덕분에 형성되는 공동체 의식이 그 때문에 잃는 사생활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사관들에게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법무부는 이 노후한 병원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시에 요구했다. 21세기 기준에 맞게 건물을 완전히 다시 짓거나, 아니면 폐쇄하도록 말이다. (p.135)

3. 사람이 먼저다

“나는 힐테가르트 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중략) 이 의학에서는 인체를 기계로 보지도 않았고, 질병을 기계의 고장으로 보지도 않았다. (p.13)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 라구나 혼다의 의료서비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주립 병원이나 빈민구호소의 운영이 가능케 하는 정부당국의 의료 정책을 함께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했던 300여개의 침상은 그야말로 영국의 자부심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영역이 민영화로 바뀌는 동안에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만큼은 공공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자랑한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세세한 서비스의 질 부분에서는 비판거리가 있고, 최근 ‘NHS 개혁’의 움직임은 이마저도 민영화로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낳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체계의 의료서비스를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해 오고 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사람이 먼저다."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의 선거 슬로건은 짧지만 강렬했다. 돈이나 물질적인 계산과 이해관계보다 사람과 생명을 더 먼저 생각하는 국정,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포부였다. 쌍용차 사태로 수많은 해고 노동자가 죽어나가고, 진주의료원 사태로 나이가 많은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편안하게 치료받던 병원을 옮겨야 한다는 기사를 볼 때 ‘사람’과 ‘생명’의 의미는 상징이 아닌 일차원적인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인간중심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만도 아이로니컬한데, 심지어 요즘 의료민영화 문제는 ‘병원 사정이 어렵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경쟁체제 도입으로 더 나은 의료 서비를 제공하겠다는 명목을 내걸고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 다시 환자들의 주머니에서 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돈들이 투입되어야 하는 모순된 구조를 보여준다. 사람보다 병원 사업의 적자니, 흑자니 하는 돈 문제가 앞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 내 최고의 의사인 커티스 선생이 주문한 신발이 도착하지 않아 퇴원을 못하고 있는 환자에게 직접 마트에 가서 신발을 사다주는 것 같은, 누군가의 눈에는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일들이 사실은 인간적 유대와 관계에서는 그 어떤 행동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환자를 잘 돌보는 비결은 곧 비효율성이다.'

 의료민영화 뉴스를 매일 접하고 팟캐스트 방송 등을 통해 알게 되긴 했지만 국내에서 일어난 이슈 그 이상으로 생각해 보진 못했다. 느린 의학, 사람인 의사와 환자, 기계의 부품 고장이 아닌 다만 상처 입은 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굳이 종교적 개념을 끌고 오지 않아도 숨을 쉬고 있는 존재로서 당연히 누리고 받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료’, ‘병원과 의사’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첨단 의료기기나 신약 개발이라는 고층 건물에 가려 사람과 생명이라는 태초의 땅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평소에 벤치마킹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공공의료원들과 공공의료서비스가 <신의 호텔>을 보면서 한국형 ‘신의 호텔’로 더 넓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