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차시의 동계방학 보충학습, 그 대단원의 막은 이강백의 희곡 <결혼>으로 내렸다. 임용고사를 공부할 때 보고 아주 오랜만에 보는 작품이었다. 주인으로부터 45분짜리 저택과 19분 10초짜리 넥타이, 하인을 빌려선 여자와 맞선을 보게 된 ‘젊은 사기꾼’. 시간이 흐를수록 하인으로부터 빌린 물건을 하나씩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된 채로 그는 청혼한다. 세상 모든 것은 사실 빌린 것이요, 덤으로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세상에 내어 놓음으로써 빚을 청산하고 가야만 한다. 덤으로 얻은 생에서 오만이나 낭비는 설 자리가 적다.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 최준영, 그에게는 처음 보는 이에게 그의 삶과 인생관을 은근히 전달하는 필력이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이력과 경험과 몇몇의 에피소드들을 장황하게 나열하지 않더라도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마치 윤동주의 시를 가르칠 때와 같이 ‘부끄러움’이었다.

	흔히 인문학을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라고도 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성찰하는 학문이라고도 말하지요. 그러나 김 씨를 만난 뒤 인문학에 대한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김 씨처럼 사람으로 인해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 사랑을 통해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그것 이상의 인문학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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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초에 강남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수강했던 자유기고가 과정에서 블로그나 트위터에 소개할 자신의 프로필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몇일 간 고민한 끝에 이런 문구를 완성했다.

‘살아(Live), 사람과(Human), 사랑하며(Love) 살기 위해 글 쓰는 자유기고가’

 그때 나는 마치 죽어있는 것 같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에 미숙했고, 진짜 

사랑해 본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정확히 이런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고 동시에 그것을 길지도 않은 문장 속에 녹여내는 능력이 있었다. 내가 삶의 모델로 삼아야 할 ‘워너비(wanna be)' 였다. 내가 살기로 결심한 모습을 그대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을 섣불리 위로하거나 높은 곳에서 훈계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그대로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위로 받았고 동시에 가르침을 얻었다. 표피 너머의 본질을 보려면 머리 싸매고 쥐어 뜯어가며 고민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연륜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해야 할 것을 해 내는 것이라는 것을...

	후배에게도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대가 없는 일도 없다! 처음부터 원고료가 얼마인지, 매체의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따지면서 원고를 쓰려 할 것이 아니라 단계를 밟아 나가라고. 순수한 열정으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묵묵히 하는 일에는 반드시 합당한 대가가 따라오게 마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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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글쓰기를 밀고 나가게 하는 동기부여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인정 욕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SNS는 훌륭한 글쓰기 연습의 장입니다. 일단 공개된 곳에 글을 올리는 일은 많은 것을 신경 쓰게 합니다. 흉보지는 않을까, 엉뚱한 반응에 직면하지는 않을까. 그런 것을 신경 쓰면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다보면 서서히 내 글의 완성도에 대해 스스로 진단하게 되고, 그런 과정이 곧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동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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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420자 칼럼을 엮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SNS공간에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기 어렵다. 나 역시 처음 트위터와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저 쓰고 싶은 것을 토해내듯이 쓰는 것이 좋았는데 어느새 부턴가 리트윗 수와 팔로워가 늘어나고 조회수와 방문자수를 체크하는 데 중독되기 시작했다. 특히 예스 블로그에서는 스타지수가 늘어가는 것이 한때는 리뷰를 쓰게 하는 힘이 되 주었다. 지금은 그것 이외에도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많아지긴 했지만 대신에 내 글이 뭔가 보여주기 위한 글이 되어갖고 있지 않은가 갈등하고 있는 참이다. 이 공간에서도 또 얼만큼 오만하게 토해 내고, 어느 만큼의 부끄러운 시간들을 견뎌 내면 한 줄이라도 좋은 글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오만한 글조차 게으르게 만들어 내는 또 다른 방만함이 걸렸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면서도 자기 글로 글이 무엇인지 ‘쓴다’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하는지 보여준 책이다. 온갖 종류의 작법과 스킬을 소개하다가 결국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는 식으로 갈음하는 책과는 차원이 달랐다. 글을 쓰기 전에 많이 읽고 관찰하고 글감을 찾기 위해 짐승이 먹이를 찾듯 절실하게 하라는 말에 자극을 받았다. 내 글쓰기는 무엇이 문제였나. 사람과 절실함과 진정성을 놓치고 있었다. 노력도 어디까지 해 보았나. 멋진 글을 보고 최소한 베껴 써 보고 싶은 욕구를 실천해 본 적이 없다. 여전히 읽은 척, 알은 척, 쓰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전문가가 그렇듯이 뜬금없이 ‘그 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무작정 읽고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계나 돈을 생각하지 않고 미련하다싶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사람. 프로페셔널의 기준을 최고 전문성으로 놓고 그만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보다 아마추어적인 자세로 프로의 삶을 사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글이 삶이 되기를 바라지 말고, 삶이 곧 글이 되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부끄러운 것은 거친 문장이나 체에 잘못 걸러진 단어 몇 개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모양새였다. 

 제주 여행 동안 읽으려고 수트 케이스에 넣어 간 두 권의 책 중 한 권. 게스트 하우스에서 ‘제주도 푸른밤’을 들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래서... 부끄러워도, 어떤 때는 조금 미워도, 다시 한번, 써 보자는 마음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