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올 초, SBS 스페셜에서 방영한 <부모 vs 학부모>는 좋게 말하면 강한 교육열, 그러나 실제로는 강박에 가까운 기대와 집착으로 ‘학부모’를 넘어 ‘학습노동 감시자’가 되어 버린 한국의 엄마, 아빠들을 다루었다. '학‘이라는 한 글자에서 오는 느낌의 차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낮에 엄마가 봉사하시는 마을 도서관에 갔다가 함께 일하시는 봉사자 아주머니와 엄마가 하시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작년 수능을 치른 아들이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자 안정권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하지 않겠다고 버틴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식도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상이셨다. 강남이고 대치동이고 좋다는 과외며 학원은 다 붙여 줬는데 ‘실패’했다며 당신도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는 말씀을 흘리셨다. 초수에 붙은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재수, 그리고 삼수에 노량진 재수학원을 거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내 동생 이야기에 희망을 얻고 돌아가시긴 하셨지만 그 이후에 ‘아이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마음을 내려 놓으시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조금 더 들어주시라.’는 엄마의 말은 들리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당신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고3 엄마’의 삶이 떠오르셨던지 혼잣말을 하셨다.

 ‘나도 다 겪어 봤지만... 다 지나야 깨닫게 되더라. 그렇게 아등바등할 문제가 아니라는거...’

 40~50대의 하우스 푸어, 20~30대의 카 푸어와 (명품)백 푸어도 모자라 ‘에듀 푸어’란다. 실제로 아이 한 명을 양육하기 위해 드는 교육비 때문에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을 뜻하기도 하지만 좀처럼 내 아이와 소통하지 못하고 서로의 욕구가 상충하는 정서적인 ‘푸어’를 나타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꿈을 갖고 다른 전공을 생각할 틈도 없이 선택한 교육학. 학부시절과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대부분의 시간동안 나는 내가 전공을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차라리 몰랐으면 싶었던 때도 더러 있었다. 교육은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간다. 이상적인 교육현장과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어쩐지 과거로 돌아가곤 했다. ‘나의 부모’에 대해 가슴이 아닌 머리로 평가하게 되는 시간이 괴로웠다. 이렇게 키우지 말지, 그땐 그렇게 하셨어야 했는데... ...

 자녀 양육 경험은 없지만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야기는 나이가 들 수록 더 많이 듣게 되었고 어쩌면 그 ‘어려운 양육’의 중심에 나 역시 그런 힘든 자녀 중 하나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또 길지는 않지만 공교육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부모의 극성스러울 정도로 높은 교육열로 시험불안을 가진 아이부터 부모의 방관으로 기초학력과 인성이 모두 부진한 아이들을 볼 때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 아이 뒤에 서 있는 부모를 상상해 보곤 한다.

2. 부모에게 자격을 묻다.

“내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가?”

“내게 부모자격이 있는가?”

 작년에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서울시청에서 마련한 예비부부교육을 받았다는 포스팅을 올려놓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학부모를 대상으로 ‘부모교육(자녀교육)’ 강좌를 많이 열고 있다. 그냥 때가 돼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면 되는 줄 알았던 시대는 분명 지나고 있다. 기성세대들에게는 ‘유난’처럼 보이는 것. 부부에게, 부모에게 자격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자란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아이 입장에서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페이지 : (p.26, 워너교수의 ‘회복탄력성’ 인용)

 이 책은 부모에게 자격을 묻고 있기는 하지만 책임을 다 부모에게 넘기지는 않는다. 마치, 청년 실업 문제를 개개인의 능력과 자기계발로 해결할 수 없듯이 교육 문제는, 특히 한국의 교육 문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일관성 없이 흔들리는 교육정책에 더 큰 자격과 책임을 묻고 싶은 게 사실이다. 부모만 잘 한다고 완벽한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유대를 갖고 지지하고 신뢰하는 ‘단 한사람의 어른’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여전히 ‘부모의 자격’과 ‘책임’의 무게감은 꽤 크다. 미약하지만 올바른 교육철학과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 역시 부모이다. 연예인들의 아이들과 아빠의 모습을 공개하는 <붕어빵>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 어디가>를 보면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부모와 아이 사이에 어떤 것이 들어차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그것이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인 것 같았다.

	우리는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생텍쥐페리의 이 말처럼 자녀야말로 바로 부모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닐까!
페이지 : 31

 여전히 많은 연구들은 가정의 경제적인 수준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나 진학 및 진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되던 때도 불과 20~30년 전이다. 최근의 교육학의 추세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의미하는 ‘경제적 자본’, 부모의 학력수준을 의미하는 ‘인적자본’, 문화예술을 향유한 정도를 가리키는 ‘문화자본’보다 가정 내 부모와의 소통과 유대관계 또는 가정 밖의 이웃이나 인맥과의 교류 정도를 가리키는 ‘사회자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지적인 인지 기능(IQ)만을 지능의 모든 것으로 삼았던 종래 지능이론과 달리 가드너와 스턴버그 등의 학자에 의해 9가지가 넘는 다중 지능들이 인정받고 있다. 최대한 다양한 자극과 경험에 노출시켜 아이가 가진 강점을 발견하고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이다.

3. <행복나무> 그리고 행복한 가정

 책 표지는 ‘붓으로 행복을 그리는 화가’ 이수동 화백의 작품 <행복나무>이다. <오늘 수고했어요> <토닥토닥 그림편지> 등에서 본 이수동 그림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분홍색 꽃과 푸른 하늘 위 뭉게구름이다. 내가 본 그의 그림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묘하게 편안한 그림이었다. 해가 뉘엇 지는 석양에 자연스럽게 뻗어나간 가지들, 그 위로 노란 송이송이 꽃이 지는 해에 물든 구름빛과 어울려 무르익었다.

가장 먼저 아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에너지와 꿈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뻗어나갔으면,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가장 건강하고 예쁘게 피어났으면. 그때까지 우리 부모들이 가지들을 튼튼하게 지지해 주었으면. ‘뿌리 깊은 나무’처럼 행복한 가정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