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에는 졸업반인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내가 좋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알지 못하고, 나는 그 친구들이 하는 농담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고작 몇 년 사이에도 이렇듯 잊혀지는 것들이 있고 우후죽순 무언가가 생겨난다. 하물며 나의 어머니 시대 또 할머니 시대에는? 그 간에는 수 년의 시간의 강이 흘러왔다.

   내가 입시를 겪을 때 사회 탐구는 네 분야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국사와 근현대사를 택했지만, 세계사를 택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와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들의 당황해 하는 표정은 우리를 민망하게 하였다. 일본이 독도를 앗아가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이미 불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의 점례라는 어느 힘 없는 여자의 삶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역사를 돌이켜본다. 야마다와 프랜더스에게 그리고 큰이모에게까지 원하지 않게 끌려다니며 치욕을 당하고, 어린 시절의 친구 복실이에게 더럽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그녀의 기구한 생활.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앞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삶의 고통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물을 조금 짐작해 보고 있다. 어째서 전쟁이 일어났을까. 왜 전쟁앞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할퀴고 짓밟아야만 했나.

   모두가 잘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지만 각자 생각이 다른것에 대해 점례가 고민하는 대목이 있다. 남편이 옳다고 여기면서도 이모에 대한 남편의 냉정함이 서러운 그녀는, 당시 어쩌지 못하고 무지했던 대다수 민중을 대변한다. 일본의 지배 아래서 일본의 압제에 협조하는 대가로 안위를 보장받았던 강호식과 같은 자들 혹은 땅을 가진자와 소작농 사이의 차등이 없어야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박항구와 같은 사람들, 코가 큰 파란눈의 사람들이 일본놈과 다를 바 없이 우리를 해하고 욕심을 채운다는 마을 사람들, 또는 동족간의 전쟁은 피해야만 한다는 독립투사의 강연과 점례의 안타까움... 하나의 목표를 가졌을지라도 그리로 가고자 하는 길은 저마다 달랐다. 그것은 분명 그 시대만의 한계는 아니다.

  

  

   작가는 사는 동안 역사의 아픔에 등 돌리지 않겠다고 했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우리들이 사는 지금의 세상에도, 그때와 같은 노래는 도돌이표로 되풀이되어 연주되고 있다. 배움이 없고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시 손 놓고 당하고 울 수 밖에 없음을.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버리는 그 공포를, 겪어보지 못한 우리는 가늠조차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성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사람들 역시 이 드라마의 희생자일 수 있다. 일제에 굴복하고 민족을 팔아 넘기는 강호식 뿐 아니라 한국인들을 물건 대하듯 해 온 야마다까지도. 이데올로기 혹은 욕심이 낳은 전쟁속에서 부품으로 이용되고 변질된 후 버려져 망가졌는 지 모르겠다. 단순히 쪽바리를 외치며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공격을 일삼거나 분노를 갖기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진단과 고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내공을 키우는 것이,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 땅을 거쳐간 사람들에 대한 또 장차 거쳐갈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