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떠오르며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가슴 한 켠에 있는 옛기억들을 꺼내 보기란 쉽지 않다. 윤대녕 작가는 이번 에세이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통해 50이 넘은 지금까지 자신이 머물렀던 장소, 거쳐갔던 공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독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작가의 '공간'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다. 자세히 관찰하고 차분한 상태에서 직시하는 것이 느껴진다. 가령 골목길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대학 시절 교제하던 이성과의 경계로 묘사된다. 차마 들어갈 수 없는 어두운 골목길의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작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아들과의 낚시 일화를 들며 작가는 바다에 대한 구체적인 느낌을 담았다.

 

파도와 갯바위가 부딪치는 지점이 서서히 하나의 고유한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경험이지만 또한 가슴이 사무쳐오는 순간이기도 했다.(p.72)

 

드넓은 바다를 마주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호기와 여유는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에 수많은 장소가 스쳐간다. 그 장소를 붙잡아 훗날 기억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책의 차례를 살펴보면 '고향집', '술집들', '역전 다방' 등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며 '휴게소, 공항, 역, 터미널', '경기장', '자동차' 등 몇몇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느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정처 없이 떠도는 나에게 이 책은 고마운 친구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