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페이지 : 6 -1904년 1월, 카프카, '자자의 말' '변신' 중에서

책은 도끼다. 우둔한 머리를 내리찍어 상처를 입히고 그 곳으로부터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생각들을 흘러내리게끔 하기 때문이다. 광고인 박웅현이 쓴 '책은 도끼다'의 모든 내용들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감각, 자연의 숨소리, 작품을 읽는 심오한 접근 방법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는 그의 말을 따라한다면, 나도 이 책에 많은 부분들에 밑줄을 그어버릴 것 같다. 아쉽게도 책에 무언가를 표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여느때 처럼 포스트잇으로 부분부분 표시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아마도 이 책은 '인문학'을 처음 접근하는 사람에게 대단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뒤로 갈 수록 어려운 내용들이 많지만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같은 경우 거의 모르겠다) 아마도 그 책들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와 닿지 않았던것 같다. 반면에 핑크마티니의 노래와 김훈의 이야기, 알랭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 쉽고 재밌게 읽혀졌다.

 

다시 모모를 읽던 때로 들어간다면 이 책 또한 '시간'에 대해서 말했다. 잔디가 자라는 속도에 귀기울일 것을 강조하는 박웅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다시 모모를 읽던 때가 떠올랐다. 사소한 시간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 하는 마음. 잔디가 자라는 시간을 느끼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재고하면서 어떻게 해야 시간과 시간사이에 의미있는 쉼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다. 새벽에 일을나가고, 빡빡하게 시간을 채우는 것만으로는 의미있는 시간이 성립되지 않는다. 너무나 빠르고 빠쁜 속도에서도 민들레 꽃을 발견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쉼표. 내게는 이제 그러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박웅현은 김훈과 고은에 대해서 이야기도 했다. 김훈이 수박한개를 가지고도 감탄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페이지 : 88

 인문학적인 사고는, 바로 수박을 탐구하는 자세와 같다. 수박이 쩍 갈라지면서 웬 도끼가 갑자기 머리를 퉁! 치는 느낌을 받는 것.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사물을 핥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고 했다. 처음 읽어볼 때는 '아 그렇구나' 하고 나도 감탄했었는데 다른 친구랑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보니, 김훈이 쓰는 표현 방법이 느끼하다고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고 해서 혹은 새롭게 바라보려고만 한다는 것 못지않게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는가 싶다. 김훈이 수박을 가지고 천지개벽을 표현했다고 해서 우러러보려고만 하기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표현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훈이 사실을 통해 감동을 전한다고 저자는 표현했지만 모두가 이 한 문장 때문에 '감동을 강요받을'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도 방법도 생각도 다르기 때문이다. 웬지 박웅현은 이 책을 통해 사소한 사물이라도 감동받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 독자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정작 봄은 우리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네.   행복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정작 행복은 내 눈앞에 있었네.
페이지 : 347

어디선가 읽었던 시였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유독 마음에 더 와닿았다. 그래도 지금 나는 행복과 함께 사는 중인 것 같다. 일하는 것도 행복하고 책을 읽는 것도 즐겁다. 뭔가를 하는데도 겁나고 무섭기 보다 도전정신이 앞서서 내 마음이 바람처럼 가볍다. 마치 어렸을 때 찬바람을 뛰놀던 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군대를 다녀와서 유독 많이 변해버렸다. 연병장 앞 마당에 감자꽃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이상한 사람이었다. 감성이 매마른 국방색 옷을 입으면서 샛노란 꽃 잎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저 대대장 지시로 심어진 꽃이었지만 나는 그 꽃을 보면서 집이 그리워졌고 슬퍼지기도 했다. 밖에 나와서는 그 때 처럼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적은 없어졌지만, 꽃 한송이를 통해 절실한 아름다움을 알았기에 지금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은 고생꽤나 해봐야 행복을 알게된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다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이 읽었어도 불행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안나 카레니나' 에서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기계적인 지식만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니 다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다시 카프카로 돌아가면 책이 얼어붙은 내 머리의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읽었다고 얘깋라기 위해 읽는 건 의미가 없어요. 단 한 권을 읽어도 머릿속의 감수성이 다 깨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겁니다.
페이지 : 348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을 한 권 덮었다. 왜 나는 책을 읽고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책읽고 서평을 쓰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책을 읽고 그냥 덮어버리면 불안하다. 도저히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한순간에 증발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이렇게 서평을 남겨놓을 각오로 책을 읽다보니 예전보다 더 깊이있게 읽혀진다. 책이 끝없도록 많아서 기쁘다. 사정없이 감수성을 깨뜨리는 행위를 할 수 있어서 매일 나는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