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SBS 지식나눔 콘서트 '아이러브人'을 보게 되었다. 강연의 주인공은 '김상근' 교수로 작년 10월달쯤 갖게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책의 저자였다. '메디치가문' 이라는 이야기만 듣는 순간 그의 책을 떠올렸고 집안 구석에 박혀 있는 '읽어야지 책' 중 하나라는 사실은 단번에 알아챘다. 실은 이전부터 이 책을 펼쳤다 닫기를 반복하기도 했는데, 책에 있는 그림들이 너무나 멋져서 펼쳤다가도 뭔가 어려운 내용 같아서 접기를 반복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김상근교수의 강연이 너무나 재밌는 것이었다! 정말 입에 침이 마르지 않도록 열정적으로 강연하는 그의 말투며, 적당한 위트며.. 쉽게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책을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피렌체의 정통적 가문인 '메디치'가문 이야기를 써내려간 책으로 350년간 메디치 가문의 역사와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메디치 은행, 15세기 교황의 대립, 다윗의 손가락, 군주론,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예술가까지..어마어마한 역사가 메디치 가문과 얽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책 제목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많은 내용들이 코시모, 로렌초, 카테리나 등 겸허하고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두루 엮어내서 어떻게 피렌체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는 지 알 수 있지만, 그 밖에도 뛰어난 예술가를 후원해주고, 명화와 메디치 가문의 연결고리 및 사연을 다룬 등 전체적인 내용으로 봤을 때,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 가 책 제목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요즈음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말 그대로 고사 상태다. 이른바 문사철의 쇠락은 부정할 수 없는 대학의 현실이 되었다.우수한 학생들은 문사철 관련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중략- 한 언론인은 이른바 '인기 없는 인문학'은 '비판'을 학문의 목표로 삼는 반면, '인기 있는 인문학'은 '성찰'을 학문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페이지 : 108

 

	오늘날 우리 경영자들이인문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초월적 사고, 감성적 직관, 창조적 영감이 중요한 시대가 다시 왔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혁신을 추구하는 창조 경여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플라톤적 사고다. 생각의 영역을 자렉 조개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고 뒤섞는 것.
페이지 : 119

인문학에 대한 대학에서의 관심은 어떤가.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실은 대학생인 나조차도 얼만큼 누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많은 강연들이 열리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그런 강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몇 없다. 인문학이 주는 값진 경험에 대한 가치보다 경영이나 경제학이 더 값진 공부로 대우 받지 않는가. 취업을 위한 공부. 스펙 쌓기. 돈 벌기. 어쩌면 인문학을 스스로 갈구하고 공부해보려는 것은 이 시대에서 사치처럼 느껴지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영자 코시모 데 메디치는 그런 인문학을 소중히 했다고 한다. 평생에 걸쳐 학자들을 후원하고 예술가를 지원하는 경영자. 그는 바쁜 경영 와중에도 철학적인 사고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탐욕에 이끌리지 않고 참된 경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팔라스와 켄타우로스>-보티첼리

 

책을 보면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와 그림들이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티첼리가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을 입었던 화가 였던 것도 그렇고 위에 있는 그림과 얽힌 로렌초의 이야기는 메디치가문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주 작은 배가 나폴리로 떠나는 로렌초, 팔라스 여신이 입고 있는 옷에 새겨진 메디치가문의 '셈페르' 문장, 지혜의 여신 앞에서 꼼짝 못하는 켄타우로스 등. 그림 속에 숨겨저 있는 숨은 암호를 해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뿐만아니라 여자화가로 명성을 익히 들었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또한 메디치 가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는 사실도 놀랄만 하다. 만약 메디치 가문이 예술과 인문학을 높이 존중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희대의 예술가들은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자신이 해야할 일에 소홀해지고 사색하는 시간이 길어질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인문학을 사랑했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메디치 가문이, 자만과 나태, 모럴해저드를 범하게 되어, 결국은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여러가지 내무사정과 인사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학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자신의 본업에서 멀어지게 했으니 가문이 망하게된 이유 중 하나로도 꼽힐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중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된다면 피렌체만은 꼭 가고 싶어졌다. 파산의 위기 속에서 신뢰를 버리지 않았던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다윗의 손가락'을 보고 싶고, 우피치 미술관도 꼭 가보고 싶다. 책 을 읽으면서 '사람을 마음을 얻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보다, 여러 사연을 가지게 된 작품들을 보고 싶어지는게 조금 의아스럽지만, 아무렴 어떤가! 흥미진진한 사연을 담고 있는 걸작들을 통해 먼 옛날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