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책장을 열며.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 아니, 기대감이 없었다기보다는 미치 앨봄의 다른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과 [8년의 동행]이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기에 그동안 저자가 내게 준 그 감동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미치 앨봄이 소설을 출간했다는 이야기를 늦게야 알게 되었고, 뭔가 마음을 따뜻하게 다스려 주는 책을 찾고 있던 나는 서슴없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선택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지만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과 [8년의 동행] 중간에 나온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도중 첫 장편소설치고는 소설적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것과 이 책이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감상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Ⅱ. 이야기의 시작.

 

[천국에서 만난 사람]은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더듬어 간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다른 작품과 비슷한 궤를 이루고 있다.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형식만 달라졌을 뿐 저자가 늘 고민해 왔던 ‘인간답게 산다는 것’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의 문제를 현생의 생에서가 아닌, 사후의 세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모리 선생님이 그랬다. 잘 죽는 법을 알면 잘 사는 법을 알게 된다고.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끌었는데... 첫째는, 누구나 한번쯤 궁금증을 품었을 법한 천국의 풍경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구현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위대함을 반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나 [8년의 동행]도 한 인간의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사후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물론, 상상에서나 가능한 세계이니 소설의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주인공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저자의 긍정적 인생관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가 줄곧 소재로 삼았던 삶과 죽음, 만남의 의미에 대해 큰 방점을 찍은 역작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이야기는 놀이공원 정비사로 일하는 노인 에디가 우연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놀이기구 사고로 죽은 에디는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생전 그가 알고 지냈거나 처음 보는 낯선 다섯 사람을 만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데, 저자는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에디의 인생에 드리운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응시한다.

 

에디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에디의 감정에 동화되어 같이 슬퍼하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떤 극적인 장치로 억지 눈물을 쏟아내게 하지 않는다. 다만, 담담히 관조하는 시선 속에 진심을 담아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외로움과 고독, 상처 따위들을 부드럽게 건드리기만 한다. 그것도 작가는 쏙 빠진 채로 늙고 병들고 가난하기까지 한 에디라는 노인을 통해서만 말이다. 나는 그런 작가의 태도에서 더욱 짠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온전히 내가 에디가 되어 울고 웃고 할 수 있었다.

 

Ⅲ. 에디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 첫 번째 만남(인연의 장) : 천국에서 에디가 처음 만난 사람은 파란 얼굴의 사내였다. 파란 얼굴의 사내는 공을 주우러 차도로 뛰어든 8살의 에디를 피하다 심장발작으로 죽은 서커스단 사람이었다. 에디는 사내의 죽음에 대한 사연을 알지 못하고 일생을 살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과 자신의 삶이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과를 한다. 사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에디는 인생에서 우연한 행위란 없다는 것과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인연의 비밀을 깨닫는다.

 

㉡ 두 번째 만남(희생의 장) : 사내와 헤어진 에디는 군대 직속상관이었던 대위를 만난다. 필리핀 전장에서 죽었다는 대위는 에디의 다리에 총을 쏴 불구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고 고백한다. 에디는 오랜 세월 자기를 괴롭혔던 다리장애가 대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원망의 말을 내뱉지만 대위는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모두 다 죽었을 것이라며 때로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 더 큰 것을 얻게 된다는 말을 한다. 에디는 희생도 삶의 일부이고 운명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 세 번 째 만남(용서의 장) : 에디는 자신의 일터였던 루비가든을 만든 사람의 부인인 루비를 만난다. 루비가든은 루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에디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루비라는 여인을 통해 그토록 원망하고 거부했던 아버지를 만나고 자기가 몰랐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된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폭력, 침묵에 대해 원망하는 에디에게 루비는 분노는 자신을 집어삼킬 뿐이라며 자신에게 분노의 칼을 휘두르지 말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말한다. 에디는 아버지와의 재회를 통해 진정한 용서에 대해 깨우친다.

 

㉣ 네 번 째 만남(사랑의 장) : 네 번째에 가서야 에디는 자기가 평생을 통 털어 가장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여인이자 아내였던 마거릿을 만난다. 아내가 죽은 후 에디의 삶은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아내와의 재회로 에디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토해낸다. 에디는 같이 살면서 상처를 주고 좀 더 사랑해주지 못한 과거를 미안해하는데, 마거릿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지만 삶의 감각이 약해질수록 추억은 강해지는 법이라며 에디를 위로한다. 에디는 생명은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다섯 번째 만남(화해의 장) : 에디가 만난 마지막 다섯 번째 사람은 필리핀 참전당시 에디가 불 지른 민가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한 필리핀 소녀였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었지만 명분 없는 전쟁의 희생자가 된 소녀 탈라. 탈라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며 삶에서 뭐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고향을 떠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에디에게 탈라는 그곳이 에디가 있어야 할 장소였다며 덕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소녀의 말에 용기를 얻은 에디는 오랫동안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자책감과 화해를 한다.

 

Ⅳ. 책장을 덮으며.

 

에디는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통해 인연, 희생, 용서, 사랑, 화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천국의 마지막 모습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은 다시 그 옆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끝이면서 시작’이라는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켜준다. 삶의 끝이 죽음이 아니듯, 에디의 죽음은 또 다른 이의 삶과 연결되고 결국 삶과 죽음과 나와 타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는 것이다.

 

나는 에디가 마지막에 들었던 신(神)의 목소리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강렬함을 맛보았다. 신은 단 한마디로 나를 매료시켰는데, 그 말은 다름 아닌 ‘집’이었다. 왜 신은 결정적인 순간에 ‘집’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아마도 지금 내가 최고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족이 있는 내 집, 바로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므로 범사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현재의 내 모습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문득 가깝기에 그 소중함을 등한시 했던 가족들을 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벅찬 마음으로 깨달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사람을 만난다. 그 중에는 바람같이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서로의 인생에 중요한 인연을 맺는 사람들도 있다. 에디는 우리의 인생에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무의미하게 지나친 사람들조차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한 지점을 차지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 누구하나라도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내 것, 내 가족, 내 직장, 내 울타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게는 그 말이 참 쉬우면서도 어렵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에디와의 여정을 통해 나를 포함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커진 것 또한 사실이다. 폐쇄적인 성격의 내게 에디의 죽음이 준 가장 큰 선물이자 깨달음이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도 미치 앨봄, 모리, 앨버트 루이스, 헨리 코빙턴, 에디와의 만남은 내게 특별하게 기억되고 간직될 것이다. 비록 책을 통한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 준 사람들이다. 가끔 삶에 지치고 고통이 엄습해 올 때 언제고 나는 다시 그들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넓은 가슴으로 나를 받아줄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나 또한 울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손수건 한 장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