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3년만의 귀환.

 

전 세계인을 하나로 만들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이 새로운 감동실화로 독자를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목은 [8년의 동행].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출간한지 무려 13년 만에 내 놓은 책이라니 어떤 내용일까 무척 궁금했다. 중간에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8년의 동행]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8년이라는 세월을 걸쳐 완성한 이야기라니 이번에는 어떤 만남으로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갈지 기대감에 들떴다. 파릇파릇한 신간 양장본이 내손에 쥐어지던 날, 책표지를 감싼 복숭아 색 띠지위에서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미치 앨봄의 얼굴이 왠지 친근하게 다가왔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특별히 깨알 같은 감사의 서문을 장식해 준 미치의 섬세함에 새삼 따듯함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Ⅱ. 앨버트 루이스와 헨리 코빙턴.

 

[8년의 동행]은 미치를 변화시킨 두 명의 인생 스승, 앨버트 루이스와 헨리 코빙턴에 관한 이야기다. 앨버트 루이스는 미치의 고향 사우스 저지에서 평생을 유대교 랍비로 헌신한 존경받는 종교인이다. 뛰어난 설교,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닌 앨버트는 랍비세계의 명배우라고 불러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반면 헨리 코빙턴은 젊은 시절 마약밀매로 벌어들인 검은 돈으로 부를 축적했다. 처음에는 그저 판매용으로 마약을 취급했으나, 그 역시 점점 마약에 찌들려 강간, 살인(방조), 도둑질 등등... 십계명의 규율을 모두 어길 만큼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후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는 갱생의 길로 접어들었고 지금은 미치가 살고 있는 디트로이트 시내의 쓰러져가는 건물에서 ‘내 형제는 내가 지킵니다.’라는 쉼터를 이끌고 있는 목회자다.

 

[8년의 동행]은 이렇게 피부색깔, 인생이력, 사회적 지위, 살고 있는 지역도 다른 두 주인공, 앨버트 루이스와 헨리 코빙턴의 삶을 통해 ‘믿음’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그들의 믿음을 어떤 보편적인 신앙의 경지로 승화시킨다. 그러기에 이 책을 특정 종교를 위한 신앙서적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보다 커다란 존재에 대한 믿음,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없다는 믿음에 대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 믿음에 대해 냉소적이고 열렬하게 신앙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던 저자가 주인공의 삶을 지켜보며 변화했듯이 이 책은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가장 범종교적이고 보편적인 인생 지침서로 내게 다가왔다.

 

Ⅲ. 가장 중요한 질문들.

 

이야기는 미치가 어린 시절 자신이 다녔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로부터 추도사를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의 사저를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미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당당했던 모습과는 달리 노쇠한 데다 병까지 얻은 앨버트의 모습은 미치에게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시작된 앨버트와 미치의 만남은 이후 기적처럼 8년이나 계속되었고 그 사이 간간이 헨리 코빙턴이라는 목사를 만나면서 미치의 삶과 신념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하는데...

 

미치는 앨버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헨리의 삶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과거의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오랜 세월 자신의 신앙에 따라 철저히 살아온 앨버트는 결코 타인을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시키려 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는 사람들을 신에게 더 가까이 이끌어 주므로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종교철학이었다. 그 대신 그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음조와 선율이 섞여야 비로소 음악이 만들어지듯이 삶의 진수는 다양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헨리는 타락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고백하고 교회는 고통과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응급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병들고 지치고 누추한 사람들이 언제고 찾아올 수 있도록 교회를 언제나 개방하고 그들의 기댈 언덕이 되어준다. 헨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며 의심하던 미치도 점차 헨리의 진심에 감동해 기꺼이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해 도움을 준다. 또한 미치는 앨버트와의 스무고개 같은 문답을 통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미치와 앨버트가 나눈 질문과 대답들은 종교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봤을 문제들이어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1. “신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아세요?”(미치)

“생명이 다하는 지점, 바로 거기에 신이 계신다네.”(앨버트)

질문2. “선량한 사람들에게 왜 슬프고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미치)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앨버트)

질문3.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요?”(미치)

“인간이 계속하기 때문이야.”(앨버트)

질문4. “우리는 왜 세상에 왔을까요?”(미치)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서, 하나님을 찬미하게 위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이 세상에 감사하기 위해서.”(앨버트)

질문5. “헌신이란 뭘까요?”(미치)

“늘 한결같은 태도와 노력, 그게 헌신이야.”(앨버트)

질문6.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내 종교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어떡하죠?”(미치)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 아야. 증오일 뿐이지.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은 저 위에 서 눈물을 흘리신다네.”(앨버트)

질문7. “사람들은 왜 그토록 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일까요?”(미치)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 때문이야.”(앨버트)

 

Ⅳ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 수위를 넘어 비난을 퍼붓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시험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런 내면의 갈등과 고민을 같은 공동체의 자매에게 털어놓았지만 하나님의 종이 하는 말에 순종해야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마다 많은 이들이 이교도들의 땅으로 선교봉사(아웃리치)를 떠났고 나도 태국의 소수민족마을로 선교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서는 타종교를 무시하고 오로지 기독교만이 진정한 종교인양 떠들썩하게 종교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나의 고민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한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맹목적인 신앙의 덫에 걸려 눈이 멀고 귀가 막혀버린 사람들 같았다.

 

앨버트 루이스는 그런 나의 오래된 고민에 대해 정말 단비 같은 처방을 내려주었다. 종교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질문과 대답, 해석, 논쟁들에 대해 아름답게 인정할 줄 아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목회자의 풍모를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하찮은 고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신앙이란 행동의 문제이고 나는 내가 성경 속에서 깨달은 진리를 생활 속에서 의식화해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타인의 믿음에 내 믿음을 투영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 믿음을 끝까지, 당당하게 고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내 신앙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신앙을 깎아내리지 않고 비방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종교인으로서 지켜야할 덕목임을 깨달았다. 보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미치는 신앙이란 결코 어떤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님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부하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임을 강조하며 글을 끝맺고 있다. 그리고는 “당신은 믿음에서 평생을 바친 훌륭한 분과 알고 있는가? 당신은 그에게서 도망쳤는가?”라고 질문한다. 마치 예전 어느 날 모리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에게는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스승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런 질문들에 머뭇거리게 된다.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도, 진정한 목회자를 만나기도 힘든 세상이라서 일까? 아니면 내가 마음의 문을 꼭꼭 닫은 채 사람들의 장점을 보지 않아서일까? 아직까지 인생을 바꿔줄만한 스승과 목회자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모리나 앨버트 루이스, 헨리 코빙턴과의 만남에 환호성을 질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살아갈 날이 많으니 언제고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어쩌면 나로 인해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변해 일을 지도 모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