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설치고는 두께감이 있는 책이었고 마냥 슬렁슬렁 읽을 수만은 없는 철학성을 담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을 책과 함께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책을 읽는 동안에 해군 초계함 침몰사건이 있었고 2008년 유명을 달리한 故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책 안에도, 책 밖에도, 온통 죽음과 관련된 사건사고들로 가득했고 온 나라가 애도의 격랑 속에 휩쓸린 것만 같았다. 손대면 금방이라도 툭하고 눈물샘이 터질 것만 같은 굉장히 우울한 나날이었다. 날씨까지 우중충하고 추워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기만 했다. 그 와중에 책 속의 인물들 중 가장 교활하고 속물적인 마키노의 사정에 급격히 감정이입 되고 있는 나 자신이 이상했다.

  나는 세상에서 마키노 같은 인물을 가장 경멸한다. 매사 자기 멋대로 거들먹거리고 남의 약점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마키노 같은 부류는 최악이다. 아내와 아들에게 버림당한 것도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그런데 왜 나는 마키노 같은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인가. 나는 한 번도 남의 약점을 돈벌이에 이용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야비하게 살아오지도 않았지 않나.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돌던 이 의문은 마키노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마음속에 선명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화,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키노의 상처와 후회가 내 가슴을 아프게 후비고 들어왔다.

  2004년 12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서울에 있었고 아버지는 남녘의 작은 노인병원에서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도 나는 급할 것이 없었다. 평소 아버지와 살가운 정을 나눈 딸도 아니었거니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아온 탓에 면역이 생긴 까닭이었다. 우리아버지는 손대는 일마다 되는 일 없이 시쳇말로 말아먹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잇단 사업실패로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어 처자식이 겪은 정신적, 물질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미안한 기색 하나없이 언제나 당당했고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살림살이를 방관으로 일관했다. 

  나는 다른 집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처럼 다 그렇게 권위적이고 이기적이고 무서운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심한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 걸로 기억한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남루한 집이었는데 친구와 친구의 동생이 아랫목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깨우느라 아버지의 배위에 올라타 몸을 간질이며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그런 친구와 동생을 나무라기는커녕 같이 장난을 치다가 일하러 나가셨다. 나는 태어나 한 번도 아버지와 장난을 쳐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아버지의 배위에 올라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중학교졸업이 전부인 건설노동자였다. 우리아버지는 그 시절에도 대학까지 졸업한 인텔리였다. 그런데도 우리아버지는 땀 흘려 일하는 법 없이 무위도식하는 한량이었다.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란 언제든 친구처럼 장난을 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과 자식들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않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일찍 독립을 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다. 최선의 방법은 결혼을 하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남들에게는 쉬운 결혼이라는 관문이 내게는 무척 어려웠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삭막한 가정에서 자라다보니 어떻게 사랑을 주고받는지 그 방법을 잘 몰랐다. 20대의 푸릇푸릇한 나이에 삶에 낙이 없고 행복하지가 않았다. 나는 내 모든 불행의 원인을 사랑으로 키워주지 못한 아버지에게 전가했다. 아버지가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계실 때는 갑자기 뒷방 노인네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또 속 긁는 소리를 해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릴 때 하지 못한 악다구니를 그때 다 풀어낸 듯싶다. 그래도 내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고 원망은 더 쌓이고 반목은 더 길어졌다. 형제들과의 사이도 원만할 리 없었다. 다 꼴 보기 싫어 멀리 서울로 떠나왔고 한동안은 해방감을 맛보며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도 어쩌면 그렇게 해 주길 기대하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관계된 일이라면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하는 버릇이 언제부터인지 몸에 배버렸다. 서울에서 마무리해야할 일들을 느긋하게 정리한 뒤 여섯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아버지의 병실에는 형부와 언니들, 오빠와 올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두들 지친 표정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좀 쉬라고 하고 홀로 아버지의 손과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드렸다. 이미 검게 변하기 시작한 아버지의 손톱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겹게 연명하고 있는 아버지의 상태를 말해주는 듯했다.

  아버지는 흐릿하지만 지긋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셨는데 그런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내 눈에 불현듯 눈물이 왈칵 끓어올랐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격한 감정이었다. 얼마 있다 아버지는 영면하셨다.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떠올려보니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불효를 저지르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도와주고 떠나신 듯하다. 아버지, 그렇지요? 아무리 물어도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시즈토의 아버지 다카히코가 아내 준코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귀는 마지막까지 감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뒤에도 혼의 귀는 살아있어 분명 들어주실 거예요.”라고. 만약 이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아버지에게 편안히 가시라고, 그동안 감사했노라 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왜 무엇이든 한발 늦게 깨닫는 것일까? 아버지의 행동을 평가하기보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할 사정을 왜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후회도 잠시, 나는 아버지를 완전히 잊었다.

  가끔 명절이나 기일에만 기억할 뿐 일상에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치유된 줄만 알았던 내 안의 분노와 상처도 단지 상대를 어머니로 바꿨을 뿐,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아버지보다 만만한 어머니에게 다그치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애써 꺼내보기 싫었던 내 모습을 고스란히 까발리고 나니 나중에라도 깨달음을 얻고 변화했던 마키노보다 나라는 인간이 더 구제불능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낮춰보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도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리라.

 책을 읽으며 위안이 되었던 것은 주요인물인 시즈토, 마키노, 유키요, 준코, 모두 다 상처받은 영혼들이었고 죄책감에 시달린 나약한 존재들이었다는 점이다. 능력 있는 친구가 죽고 보잘것없는 자신이 살았다는 시즈토의 죄책감, 버림당하는 것이 두려워 먼저 손 내미는 것을 거부했던 마키노의 초라한 자존심, 홀로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거짓 사랑을 갈구했던 유키요의 왜곡된 이기심, 건강한 오빠대신 약한 자신이 살았다는 준코의 죄책감은 인간이기에 관계의 고통을 겪고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지만 역시 인간이기에 상처를 딛고 새 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애도하는 사람].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시대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시즈토의 모습이 외로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순례가 언제까지 지속되든 애독자로서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

  나는 아버지의 사진을 앞에다 두고 시즈토처럼 애도하는 행위를 해 보았다. 왼쪽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왼손을 땅에 닿을락 말락 하게 내렸다가 가슴께로 가져가 오른손에 포갰다. 어디선가 나지막한 시즈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버지는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구에게 사랑을 받았습니까? 누군가가 어떤 일로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하고 말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하고 특히 손자를 어여뻐했고 처자식과 형제들에게 사랑받았으며 월사금을 대신 내 준 나이든 제자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와 감사를 표했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버지를 내 가슴에 새기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애도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명의 귀함, 사람의 가치, 관계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게 해 준 [애도하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거칠고 모나고 상처투성이의 '나'이지만, 그 상처의 대부분이 내가 스스로 꼬집고 긁어 상채기를 덧나게 한 것들이지만, 그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회복의 지름길임을 다짐한다. 헛된 다짐이 되지 않도록 가슴에 도장까지 고이 새긴다. ‘이 세상은 한 송이 꽃’이라고 설파한 어느 노승의 말이 비로소 내 안에서 의미 있는 꽃으로 피어나는 느낌이다.

  또한 시한부를 선고받고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준코의 의연한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생과 사가 비속하다고 할 수 있는 생리적인 차원에서 이웃하고 있다는 현실이, 자칫 과민반응을 보이기 쉬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는 준코의 고백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됐을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비켜갈 수 없는 길이니,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사는 나 같은 인간도 큰 위안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지니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소유보다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할 즈음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가 생각나 옮겨 적는다.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