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출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가 재출간 됐다. 문이당의 판권을 사들여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옛 문이당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 우산을 쓴 남자의 실루엣에서 아버지의 쓸쓸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IMF 때 많은 회사가 쓰러지면서 중산층의 든든한 아성이었던 많은 아버지들이 같이 무너졌다. 그러면서 이 책은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장길수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전국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 아버지 신드롬의 일등공신이었던 이 책도 10여년의 세월은 격세지감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분명 달랐다. 좋은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불행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한 가장의 회환, 남겨진 가족을 위한 준비, 짧은 일탈, 냉담했던 가족들의 변화와 화해, 친구들의 대가없는 우정 등, 통속소설의 신파적 구조를 그대로 답습한 이 소설이 단시간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있었을 지언정 시대를 초월해 불멸의 역작으로 남지 못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캐릭터들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채 독서를 계속하다보니 자연 정신은 산만했고 속도는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작품 이후 비슷한 류의 아류작들이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많이 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의 죽음에 그치지 않고 엄마, 가족 구성원 누구의 죽음이라도 결국 그 귀결점은 가족의 화해와 깨달음이었다. 과거 IMF와 비슷한 경제위기가 재작년 전 세계를 강타했지만 학습효과 때문인지 정서적 회복속도는 그때보다 빨라진 듯 하다. 지난 10여년의 세월 동안 소설의 경향도 다양해 졌고 인간의 심리를 보다 섬세하게 다룬 소설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메말라진 것일까? 무엇이 나를 이렇듯 냉소적 인간으로 만들었나? [아버지]를 읽으며 내가 나에게 계속 던진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