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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10월 13일~ 10월 22일 진행된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저자와의 온라인 만남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정명 저자와의 온라인 만남 전문보기]

바람의 화원, 시작은 이랬다.

무사여솔 : 역사속 두분의 화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이정명 : 서양미술사에는 위대한 화가들이 많지요. 고흐, 고갱, 인상파 화가들, 렘브란트,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지만 우리 화가들은 왠지 그들에 비히면 왜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맹목적인 의식때문이 아닐까요? 서양 것이라면 무조건 우월하고 서양 예술가들만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편견 말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위대한 예술가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들이 그 위대한 인물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려하지 않을 뿐입니다. 바람의 화원은 모나리자에 뒤지지 않는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해 서양의 미술가들을 능가하는 그들의 그림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고갱과 고흐, 레오나르도다빈치와 미켈란젤로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화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렴풋함과 모호함의 매력

그린현이 : 바람의 화원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그 안에 제가 빠져들어 가는거같아요. 문장하나하나에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들거든요. 책 쓰시면서 가장 염두해 두고 쓴 부분과 이부분은 이런 관점에서 봤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이정명 : 그린현이님. 두어시간을 마주 앉아 나누어야 할 말씀을 몇줄에 줄이자니 막막하군요. 말씀드리자면... 첫째 저는 이 소설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호함을 유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신경쓴물들의 심리나 내면을 가능하면 설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안개에 쌓인듯한 어렴풋함과 모호함을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제가 일일이 설명하고 명확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어렴풋하고 불확실한 부분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인물들의 심리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독자들이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제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너머까지 생각하고 이야기를 완성하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이야기는 독자님들게서 저와 함께 쓴 소설이 되는 것이겠죠?

인생의 모토는 없다

루키아진 : 우선 이정명님께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의 뛰어난 상상력 덕분에 여러가지 다양한 시선으로 작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모토와 인생의 모델로 삼고 계신분은 누구신지 알고 싶습니다^^

이정명 : 루키아진님. 저는 인생에 모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안그래도 복잡한 세상인데 저 자신을 속박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델로 삼는 사람은 한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입니다. 굳이 누구 한사람을 모델로 삼아서 그와 독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단지 저는 저의 방식대로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겠죠.

원작의 다양한 재생산에 따른 장단점

Arabesque : [바람의 화원]의 드라마화로 원작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이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을텐데요. 이를테면, 소설에서 반전의 묘미였던 ’신윤복이 여자였다’라는 픽션을 드라마에선 처음부터 드러내고 시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접한 독자라면 별 문제없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엔 소설을 읽을때의 재미가 조금은 반감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작가님 입장에서 원작이 다양한 컨텐츠로 재생산 됨으로써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이정명 : 아라베스크님. 질문 감사합니다. 물론 그런 우려를 하실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이 여자였다 라는 반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독자나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요소는 될 수 있겠지만 소설 속에서 신윤복이 여자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을 것입니다. 소설에서 나타내고자 한 것은 그의 그림이니까요. 쉽게 말해서 바람의 화원의 주인공은 김홍도도 신윤복이지만 또 하나의 주인공은 신윤복과 김홍도가 남긴 그림들이 주인공입니다. 신윤복과 김홍도와 주변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는 그들의 그림을 펼쳐보이는 장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작이 다양한 컨텐츠로 가공되는 것은 저 또한 바라던 일입니다. 꼭 원소스 멀티유즈를 위해서 소설을 쓴 건 아니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더없이 행복한 일이겠죠.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르는 방법

나는 우주다 : 영상이 곧 그림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어떤 전율을 느꼈다고 할까요. 정말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습니다. 우리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집에 있는 김홍도, 신윤복 책을 꺼내보게 되었네요. 아이들과도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열린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궁금한 점은 < 뿌리 깊은 나무 > 에서도 느낀점이지만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정명 : 나는 우주다님.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상상력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의 마음속에도 무한한 상상력이 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상상력을 부모가 길러준다기보다는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부모는 역할을 다하는 것이겠죠. 무엇보다 많은 책을 읽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두어시간 해도 모자랄 것 같아요. 가장 중효한 것은 많은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소재나 자료수집은 어떻게

달마 : 평소에 소재나 자료수집을 어떤식으로 하는지 궁금하네요.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구상해 나가는지.. 아니면 그냥 다른 일을 하는 과정에서 흥미롭게 접하는 소재를 잡으시는지. 그리고 팩션에서 가장 중시하는게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이정명 : 화계달마님. 소재나 자료수집은 특별히 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작가든 마찬가지일 텐데요. 머릿속에는 수십가지의 이야기거리가 맴돌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그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료를 찾아 검토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저의 경우 신윤복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머릿속에 생각해오던 것입니다. 그것이 계속 머릿속에서 가공되고 여러 자료를 통해 이야기로 만들어졌지요.

팩션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관계

물방울37 : 작가님 책을 보다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 나와서 픽션적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쩔때는 역사적인 사실과 혼동이 될때가 많아요. 이 사람 정말 역사적으로 이런 인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소설을 역사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소설의 한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바람의 화원이 인기가 있은 후에는 더욱더 역사적 인물들이 첨가된 역사소설이 많기에 하나의 트랜드를 만드신 작가님께 궁금하여 여쭤 봅니다.

이정명 : 물방울 37님.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을 생각해볼까요. 어려운 문제를 풀기보다 외면해버리면 영원히 그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힘들더라도 끙끙대며 문제를 풀면 오답이 나올 수도 있지만 오답을 통해 그 문제의 풀이법을 익히고 정답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인 정답을 위한 오답인 셈이죠. 단순한 비교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팩션과 역사적 사실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외면하기보다 허구의 이야기로라도 그 시대와 인물을 접하고 흥미를 가진다면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서적이나 탐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쟁이로 살아간다는 것

통찰력과직관 : 한국의 전형적인 "글쟁이"들을 보면 전직 기자인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예외가 아니신 것 같은데, 기자의 길과 작가의 길, 글로 먹고 산다는 공통점은 분명 한 듯 싶습니다. 그외에 기자 생활이 작품을 쓰는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또한 안정적인 기자직을 버리고 전직 소설가로 살아가는데에 어려움은 없으신지, 그러한 과도기적인 단계에서의 에피소드는 있는지, 마지막으로 치밀한 구성은 어떻게 짜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정명 : 질문 감사합니다. 기자생활은 제가 알게 모르게 작품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생각입니다. 안정적인 기자직을 버린 것은 제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궁핍하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싶었습니다. 물론 생활의 두려움 때문에 두어번 직장을 그만두었다가 불안에 쫓겨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람의 화원이 탄생하기까지

토미맨 : 이번 바람의 화원은 김홍도와 신육복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 데 작가님은 이번 소설을 쓰실때 역사속에 기초한 논픽션이야기라 힘들었을텐데 어느 문헌에서 자료를 참조하셨고 그과정은 얼마나 걸렸는지 알고 싶네요 제가 역사학도를 준비하고 있어서 문의합니다 작가님 다음 소설도 정말 기다려지네요.

이정명 : 이 소설은 역사에 기초한 논픽션이라기보다는 역사에 기초한 픽션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사실 수많은 자료들을 참고했기에 한 권 한 권 을 일일이 나열하기는 곤란할 정도입니다. 다만 한국화와 단원의 미술세계에 대한 오주석선생님의 일련의 저작물들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풍성한 자료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은 저작자들은 책 첫머리의 일러두기에 써 두었습니다. 그 외에 이름을 열거하지 못한 많은 분들의 연구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자료 수집과 검토기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7~8년 이상은 되지 않았나 어림짐작해봅니다. 물론 하루 종일 자료를 찾아다니고 검토하는 식은 아니었죠. 천천히 기회가 닿을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자료를 축적하는 과정을 즐겼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