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포괄적이고 복합적이며, 그만큼 다가가기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든다. 관심은 있지만 정작 고루한 이야기나 형이상학적인 이론 같은 벽에 부딪혀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할 것 같다. 명문대에서 선정한 고전 100선이니, 꼭 읽어야 할 고전 목록 등을 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격하게 표현하면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나 공자 왈 맹자 왈이 취직하고 돈 많이 버는 데 보탬이 되긴 하냐’는 생각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도 끝끝내 궁금증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 책,  『친절한 인문학 길잡이(책비, 2014)』를 들었다.

 책은 ‘초보자를 위한 인문학 사용설명서’라는 부제를 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부터 노자의 『도덕경』과 카뮈의 『이방인』 등을 거쳐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까지 15권의 인문고전을 다루고 있다. 사실 목차를 보았을 때 큰 기대는 접었다. 너무 길어서, 옛날이야기라, 어려운 말이 많으므로, 공감이 되지 않을 것 같기에 외 수많은 변명을 갖다 붙이고 외면해왔던 책들이 대거 등장해서다. 동양과 서양 사상서에 고전 문학이라니……. 어쨌든 결론부터 전하자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잘 읽었다.

 글쓴이는 이 책에다 사상서와 고전을 구구절절 옮겨다 적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적절히 엮어서 소개하고 있다. 챕터마다 Tip과 저자 소개, 주요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해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산뜻했고,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논어』, 『맹자』, 『도덕경』은 공자, 맹자, 노자가 붓을 들고 직접 사상을 나열한 서책이 아니라, 그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과 삶의 태도를 엮은 것이라고 한다. 『톰 소여의 모험』과 그 후속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이름은 사실 필명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모두 그가 죽고 난 후 출간된 것이며, 실은 소설이 아니고 연극 대본(희곡이니까)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문학작품의 경우 이야기의 결말이 나와 있어 책에 대한 궁금증이 반감되었다는 것이다. 적당히 끊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100쪽을 조금 더 넘어가면 ‘잠깐 머물기’라는 코너가 나오는데, 고전 읽기를 여행과 그 준비 과정에 비유한 것이 흥미로웠다. 전체적으로 장황한 인문학 해설서라기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인문고전 소개집에 가깝다. 그래서 인문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요즘은 사람들이 내뱉는 말과 고민과 생각의 무게가 무척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주변을 보아도 그렇다. 찰나의 감정을 SNS에 올리고 인터넷 지인들의 위로와 관심을 받는 걸 즐긴다. 잘 모르겠는 건 조금 더 생각하기 귀찮으니 포털사이트 검색 후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을 참고해서 대강 해결한다. 단편적인 일화나 기사를 보고 왁왁 달려들다가, 진실이 밝혀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쩍 빠진다. 지하철을 타도, 친구를 만나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뭔가 본질이 결여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스턴트, 주먹구구식으로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내가 아는 일부분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의 뿌리가 얕으면 삶의 방향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문고전이 중요한 것은 잘나고 대단한 사람들이 써서 오랜 세월 찬양 받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 내 정체성을 단단히 하고, 세상을 판단하는 눈을 기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심어줄 내용들이 숨어 보석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이전에 세상을 살아간 현명한 이들의 이야기를 오늘날에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서두르고 조바심 낼 것도 없다. 그냥 천천히,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종종 인문학 서적을 펼쳐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