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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어서 삶이 원하는 대로 가고 있지 않을 땐 리셋 찬스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하고. 하지만 신은 우리에게 버튼 대신에 자유의지를 주시고는 한 번 뿐인 인생 잘 살아보라고 하신다. 우울하거나 권태로울 땐 밑도 끝도 없이 빨려 들어가도록 놔두는 자유의지를, 욕망으로 불타오를 땐 그것이 욕망인지 조차 모른 채 그것만 바라보도록 하는 눈먼 자유의지를, 그 길의 끝에서 어디로 갈지를 선택하는 것도 자신에게 달렸다. 중요한 것은 그 자유의지는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 속에서 혼란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타인이 나와 같을 수 없다는 것, 사랑을 맹세하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한 부부조차도 같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안전한 장벽을 둘렀음에도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종종 깨닫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도 괴물이 꿈틀대고 있다. 자꾸만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사회질서 유지라는 명목하에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억누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행복한 생활이 있고, 눈 뜨면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만나서 수다 떨 수 있는 사랑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라며 비집고 나올 수 없도록 꼭꼭 숨기곤 한다. 공허한 밤을 마주했을 때, 무기력이 불시에 찾아올 때에야 비로소 그 공허가, 무기력이 우울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남은 건 실현되지 않은 젊은 날의 꿈, 시도해보지 못한 가능성과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용기 없음과 미련함이다. 그 길에서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사. 랑.'이었다. 타인의 자유의지가 빚어낸 허물을 끌어안는 것도 사랑이고,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도 사랑이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랑이다. 광활한 우주의 섭리만큼이나 광활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이야기,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이다.

주인공 린다의 심리상태를 따라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녀가 깨달았던 공허와 무기력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고자 고뇌하는 모습, 마침내 찾은 평화에서 깊은 공감을 하였다. 우리는 누구나 외롭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느껴지는 외로움, 나를 아껴주고 내게 좋은 일이 있기만을 바라지만 그들이 그렇게 나를 도우려 애쓰는 것은 자신들도 똑같은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깊은 위로다.

머리로는 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삶을 공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영혼은 혼란에 빠져 헤맨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는 아이들, 남편, 애인, 상사, 직원, 학생 등 여남은 명 정도의 사람들을 보살피며 평범한 하루로 인생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고 격려의 말을 건넨다. 누구도 자신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수록 더욱더.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외로움은, 결코 자신을 속일 수 없으면서도 행복한 척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써야만 하는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사코 아침마다 피어나는 장미꽃만을 보여주려 하고, 상처 입히고 피 흘리게 하는 가시 돋친 줄기는 안으로 숨긴다. " (본문 221쪽)

우리는 우리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불가해한 동물이다. 모든 문제는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다.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린다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학창시절 사귀었던 친구와의 불륜으로 짜릿한 모험을 했다. 마음 가는 대로 끝까지 가보고 나서 그녀는 깨달았다. 린다가 열었던 판도라의 상자엔 희망이 아닌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사랑만이 해답이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방법이다. 신으로부터 멀어져 파편화된 삶 속에서 해답만을 찾다가 우리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놓치고 만다. 사랑만이 삶의 신비와 믿음에 대한 진정한 답이다. 그 답이 불륜에 있지 않다는 결말. 그것은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할 때 느끼는 행복 같은 것이고, 그 효과는 사라지고 전보다 더한 절망이 찾아온다. 사랑만은 우주의 영혼에도 영원히 새겨진다는 파울로 코엘료식 결말이다.

사랑. 눈에 기쁨의 눈물이 차오른다. 아무도 우리에게 사랑을 강요할 수 없고, 우리도 타인에게 사랑을 강요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바라보고, 사랑과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모방하는 것뿐이다. 사랑을 얻는 다른 방법은 없으며, 거기엔 그 어떤 신비도 없다. 타인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의 적을 사랑하면 우리 삶에서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마주하게 되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런 비극들 속에서도 만약 그곳에 조그마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랑은 더한 사랑을 낳기 때문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 속에서 기뻐한다. 머지않아 진리가 모든 것을 만회할 것을 알기에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렷하고 겸손한 정신으로 편견이나 편협함 없이 진리를 추구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이 발견한 것에 만족한다."(본문 357쪽)

인생을 다 알 것 같았는데,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마주 하곤 한다. 린다와 가족들의 고뇌는 숨겨진 우리 마음속의 한 조각이다. 인생이 기대했던 대로 풀리지 않는구나 불평만 할 줄 알았지, 그 인생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린다의 남편이 말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믿음을 가져야 돼. 그러려면 편견이라는 장애물을 무너뜨려야 해. 또 그럴 용기를 내려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거지. 우리, 주어진 날들에 만족하며 살아가자. 삶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삶은 언제나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려고 하잖아. 우리가 거기에 힘을 합해야지. 지당하다. 삶은 우리를 악으로 이끌지 않는다. 삶을 그렇게 가도록 한 것은 우리 자신일 것이다. 좋은 곳으로 삶이 나아가려고 할 때 우리도 힘을 합해야 한다. 너무나 뻔한 말인데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