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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을 폭로하고, 통속을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의 허위를 드러내고 싶었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홀로 있는 진짜 나의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일상을 살면서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 느끼는 순간은 아무래도 노화를 통해 느끼게 된다. 밤을 새고 난 다음날도 끄떡없던 것이, 술을 먹고난 다음 날에도 멀정하던 정신이, 화장을 짙게 바르지 않아도 생기가 돌던 피부가 예전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어느 순간 찾아온다. 감기에 걸려도 감기약 없이도 금방 낫던 것이 한달이 걸리고 조그만 상처에도 쉽게 낫지 않는 걸 보며 나도 늙어가고 있고, 나이듦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구나 싶다. 노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새롭고 열정적인 변화에 때로는 깜짝 깜짝 놀라며 우리 어릴 땐 이랬고 저랬는데, 하며 과거의 고리타분한 생각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생각조차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의 노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태어나 생을 부여 받은 순간 덧없이 흐르는 시간속에 우리는 늙어간다. 그 늙어감에 대해 철학적으로 깊이있는성찰을 통해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책을 최근에 읽었다.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책인데,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덧없이 흐르는 시간, 낯설어 보이는 자기 자신, 사회적 연령, 문화적 노화, 궁극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늙어간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성찰한다.

우리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일까? 유일하게 우리의 죽음을 째깍거리며 알려주는 것이 시간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노인은 전적으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자이자, 시간의 소유자이며, 시간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표면적으로 우리가 그 시간에 대해 느끼고 인식하는 단계는 더이상 예전의 나가 아닌 나를 만날 때일지도 모른다.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가 아닌 나가 되는 깊은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따르는 몸의 퇴화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데, 저자는 명쾌하게 정의한다. 노화는 불치병이라고!! 나이를 먹고 있고 늙어가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어서인지 한마디 한마디 공감이 간다. 슬프게도. 저자의 말처럼 몸은 감옥이 되지만 어떻게 보면 마지막 안식처인지도 모른다. 몸은 인간이 지닌 가장 지극한 진정성이다. 결국에 가서 생명의 권리를 담보하는 것은 언제나 몸이기 때문이다.

"아픔과 질병은 몸이 쇠락하며 벌이는 축제다. 몸은 자신과 나에게 이 축제를 베풂으로써 나라는 자아는 이 축제에서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자아의 성장에 불을 붙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나라는 자아가 행사하는 몸의 기능은 떨어지지만 동시에 나의 직접성 곧 내 자아의 자각은 늘어난다." (본문 82쪽)

자아의 성장에 불을 붙이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늙어감이 단순한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진정한 나를 깨달아가는 과정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늙어가며 나이값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나이를 먹고 늙어감은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그렇게 부정하고 고통속에 살아야 할 만큼 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소외가 존재소외가 되어감에도 우리는 매일 하던 대로의 것을 충직하게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사회적 연령에 익숙해지고, 문화적 노화에 차츰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나이 먹은 사람을 환영해 주는 곳이란 없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죽음과 함께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끝이 되는 것이다. 나이듦은 바로 받아들임이다.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세계는 늙어가는 우리를 부정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애매함과 모순됨에서 보자면, 부정은 곧 우리 자신의 긍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낮과 밤이 여명 속에서 서로 맞물리듯이." (본문 94쪽)

읽는 내내 왠지 자꾸만 저항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젊다고!!' 라고. 한마디 한마디 공감은 하면서도 저항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직은 늙어감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구나 싶었다. 슬슬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순간 나라는 자아도 성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세계는 늙어가는 우리를 부정할 뿐이다. 그리고 그 부정이 곧 우리 자신의 긍정이 될 수 있도록 영혼의 성장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