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얼마전에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본 적도 없고 정식 보육기관에서 생활이 처음인지라 많이 낯설었던지 호된 적응기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힘들다고 혼자 앉아 울었다는 아이가 새삼 고마웠다. 내가 우리 아이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까. 그렇게라도 마음의 상태를 표출해준 것이 나에게도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적응잘하는 아이들 보며 나름 우리 아이도 잘할거야! 맘속으로 늘 당당했고 그런 것쯤 문제없어! 확신하고 있던 나를 꼬집어 주는 시간이 되었고, 다행히 아이도 용기를 내 주고 있다. 육아를 하며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육아서를 펼친다. 남들 다 아는 이야기,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 어느 유명한 박사가 한 얘기를 자기 이야기인양 나열하는 육아서까지 아이가 커가면서 육아서도 같이 늘어났던 것 같다. 하지만 육아서는 육아서일뿐이었고 달리지는 것은 없었다. 온전히 아이와 엄마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었고, 아마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나도 육아서 하나쯤 써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깨달은 것도 많았고 후배 엄마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래서 육아서 그만보겠다고 선언했었는데 <아이들은 길에서 배운다>라는 제목에 끌려 또 읽게 되었다. 작가가 직접 고민하고 깨달은 것을 쉽게 들려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작가의 양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데 내가 늘 생각해왔던 것과 어느 정도 닮아 있어 상당부분 공감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터득한 작가의 철학을 담고 있다. 하나같이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하고 다독을 하고 일찍 글을 깨우치고 잘 난 아이로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잘 나고, 일류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기에 작가는 '좋은성적'보다는 '좋은 습관', '좋은 추억', '좋은 관계', 이 세가지로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실천하며, 이 세가지를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었던 유럽 여행에서의 값진 이야기들을 작가의 양육 철학과 함께 들려준다.

"부족함이 많은 부모라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다 해주지는 못해도 좋은 습관, 좋은 추억, 좋은 관계만은 차곡차곡 품고 자라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이 세가지만 있으면 어떤 대학을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

여행지를 고르고 어떤 여행이 될지도 작가에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유럽하면 떠오르는 누구나 가봤을 유명한 곳이 아니라 유럽여행 중 거의 제외되거나 들른다고 해도 몇시간이면 쫙 훑고 지나가는 베네룩스 3국. 휘리릭 돌며 사진만 찍는 유럽 여행 대신, 천천히 오래 둘러보는 작은 여행을 선택한 것도 작가의 철학이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여행이 스펙쌓기처럼 어디 어디 다녀왔다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이 되도록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란 말이 와 닿았고 엄마가 혼자서 계획하고 아이들을 이끄는 여행이 아닌 함께 경험하고 함께 배우는 여행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정보도 많지 않았던 3개국을 돌며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깨달았던 여행의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게 작가의 철학과 함께 담겨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누구보다도 친절함을 베풀어주었던 낯선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 맺기,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익히고,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을 잊지못할 추억들, 낯선이들과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 언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과, 힘들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었던 따뜻한 사람들이 늘 함께 있다는 것 등 아이들에게는 산교육이 되기에 충분한 것들을 여행에서 얻고 있었다. 부족한 여행이었기에 많이 채울 수 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여행, 우리는 그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설렌다. 작가도 가보지 못하는 곳은 책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고 고백했듯 나 또한 가보고 싶은 곳은 여행책을 사 모으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곤 한다.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여행의 참 맛을. 물론 일상을 벗어나 새롭고 아름답고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색다른 공간이 다른 곳으로 왔다는 실감을 느끼게 해줄때의 그 가슴벅참을 모르지 않지만 어쩌면 한 템포 쉬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들의 속도에는 늦춰지겠지만 경험하고 느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만큼은 가슴깊은 곳에 새겨져 날개를 달고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느낀 것은 느리게 천천히 사는 삶의 가치였다. 사교육의 함정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한발짝 물러나 천천히 느리게 가는 것이다. 은이와 준이가 낯선 여행지에서 보여줬듯 아이들이 서 있는 곳이 놀이터가 되고, 아프면 아픈대로 쉬었다 가고,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 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죽어도 하고, 결과가 아닌 아이들의 성장에 초첨을 맞춰 직접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곧 인생이고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값진 것임을 엄마의 따뜻한 시선으로 엿볼 수 있었다.

"'경쟁'이라는 잣대가 아니라, '성장'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경쟁에서 이긱 위해서가 아니라, 머리도 마음도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벨린다처럼 좋아하는 것을 찾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P. 217)"

주목할 것은 어쩌면 부모의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양육 철학은 어느날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작가 또한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부모 밑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고 보고 배운 것을 통해 자신의 아이들에게 살면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어릴적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누구보다 여행이 주는 가치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여행을 통해 좋은 추억을 많이 선물하고 싶어한다. 작가처럼 그런 부모밑에서 자란 작가의 아이들은 부모가 되어서도 어릴적 추억을 회상하며 좋은 부모가 돼 있을 거라 짐작된다. 그래서 당장 내가 아이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다.

덧붙여 수많은 경쟁으로부터 우리 아이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은 나의 육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에 메모해둬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 유기농처럼 모양은 삐뚤빼뚤일지언정 속은 꽉 차도록 할 것, 빈둥거릴 시간을 많이 주어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도록 할 것, 화요일 목요일은 '화목한 책읽기'라는 시간을 만들어 같이 책읽는 시간을 같는 것. 이 시간은 정말 탐이 나는 항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카우치 서핑으로 집에서도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작가의 가족처럼 아이가 조금 크면 우리 가족도 실천해 보고 싶다. 이처럼 공감이 가고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엊그제 갓 태어난 것만 같은 아이가 어느덧 커서 엄마로부터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눈깜짝 할 사이에 난 학부모가 돼 있을테고 많은 경쟁의 손길 속에서 흔들리는 갈대마냥 다잡았던 마음을 흔들며 아이와 혼돈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금세 지나갈지도 모를 이 시간을 나도 아이도 새롭게 마음을 다져보는 기회가 될 것임은 분명하기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아직 몇 년 후의 모습이 그려지진 않지만 아이의 밝고 행복한 미소만큼은 벌써부터 느껴지는 듯 하다. 좋은 책은 역시 좋은 책이더라. 커가는 자녀를 두고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육아가 부담스러운 부모들에게 사교육 대신 산교육으로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부모들에게는 좋은 육아서가 되리라 생각된다. 육아속성반이라도 있는양 훌륭하게 키우는 방법을 주욱 나열하는 육아서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부모들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신의 꿈을 꾸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가치있는 삶으로 육아를 만들어가도록 힘쓰는 작가의 모습이 보기좋고 응원하고 싶고 나또한 닮고 싶은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