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가 <A Modern Witch>라길래 현대의 마녀들은 어떤 모습일까 잔뜩 기대를 했다. 마녀라고 하면 떠오르던 뾰족한 마녀들의 모자, 빗자루로 상징되는 무엇들,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며, 필요할 땐 짜잔 사라지기도 하며 현란한 주술을 서슴없이 발휘하는. 어쩌면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요즘 마녀들은 그보다 더 멋지고 판타스틱한 상상 그 이상의 마법들을 보여주지 않을까. 상상이 날개를 달고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니 뭔가 조금은 기대와 다른 마녀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사실 다른 사람의 마음 읽는 것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굳이 마녀라고까지 해가며 마녀 공동체를 언급하는 것은 무엇일까. 상상에 날개를 달았지만 높이 날아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버렸으니.

 

시카고에 사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로렌. 보금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집을 알선해주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28년 동안 자신이 마녀인지도 모른채 평범한 살던 그녀에게 마녀들이 소환주술을 걸어 놓은 채팅방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이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진짜 마녀인지 아닌지 테스트를 받게 되는데, 마녀공동체에서 보내진 제이미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떤 긴장감도 없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에 버무려 가족간의 사랑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즐거울 수 있었던 건 아마 마녀들, 마법사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흔히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상상이 가는 인물들이라는 것. 그리고 어디선가 마녀들이 채팅방을 열어놓고 마녀일지도 모르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어느새 내가 그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28년을 마녀인지 조차 모른채 살아왔던 로렌에게 있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잘생긴 제이미를 만나는 일은 또 어떤가. 그런 즐거운 상상으로 즐거운 책읽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게 되는 흡입력이 있다. 어쩌나 나에게는 아이를 기죽이고 울리는 재주밖에 없는데.

 

이 책이 주는 묘미라면 판타스틱하고 무시무시한 악에 선 마법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감동적인 마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법을 선을 위해 사용하고 윤리를 따르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에 초첨을 맞추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저마다 다른 재능들이 모여 강력한 주술을 할 수 있고 나아가 지구를 구할 정도로 놀라운 마법이 탄생하는 것이다. 4살 꼬맹이 에어빈이 주술자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마녀들의 역사를 지키고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마녀들의 이야기, 초보마녀들이 마법을 잘못 사용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초보마녀들을 채팅방으로 불러 모으고 기꺼이 훈련시키고 윤리를 가르친다는 착하고 착한 마녀들의 이야기다. 우리의 초보 마녀 로렌이 자신이 마녀라는 의심을 해소하고 마녀공동체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가족간의 사랑과 우정이었다.

 

어쩌면 작가는 유머러스하게 마녀들을 등장시키면서도 현대의 마녀들을 우리의 모습에 비춰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기심에 마법을 꿈꾸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툭하면 남의 사생활을 케내어 폭로하기 바쁘고 있지도 않은 일을 있었던 일 마냥 정치적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모습과 잠잠해질만 하면 해킹하고 정보를 빼내고 온갖 정보들을 훔쳐볼 생각에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의 유쾌한 우당탕 마녀들의 마법은 선하고 필요한 곳에 씌여지도록 노력한다. 마법의 룰을 정해 유대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풀어놓는다.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감사를 전하는 일에는 반드시 마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착한 일에는 특출한 재능 따위 필요없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쓸데 없는 것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다.

 

"매일의 작은 관계들이 모여 가족의 정이 쌓여가는 거랍니다.

블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들과 함께 놀고 배우는 시간이 소중한 거죠."(P.287)

 

옛날 옛날 우리가 알고 있던 마녀들이 지금의 세상을 보면 가히 마녀들이 판치고 온갖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비치지 않을까 싶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마법이 뿌려진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클릭 한번이면 뭐든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굳이 멀리 가지 않고서도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 사건 사고들을 들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특별한 주문 한 번 외우지 않고서도 척척 이루어지는 세상이니 말이다. 로렌은 특별한 마녀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중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그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마녀 시리즈 책이라는데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지만 예측불가능하지도 않다. 초보마녀 로렌은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에 더의상 의문을 품지 않고 진정한 마녀로서 거듭날 것이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고 선행을 하며 행복한 마녀가족들과 살아갈 것이다. 채팅에 익숙하지 않았던 모이라 할머니가 컴퓨터를 쉽게 다룰 수 있게 된 것처럼, 스마트폰 하나가 세상을 바꾸어 놓고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하기 싫은 우리 현대인들처럼, 적응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현실을 자신의 삶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해리포터>를 기대했지만 맥컬리컬킨이 나오는 <나홀로 집에>로 흘러버린 것이 여전히 아쉽긴 하지만 마녀들의 훌륭한 교관 제니의 목소리만큼은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다.

"넌 항상 마녀였단다. 그저 네가 몰랐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