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시집 한권 제대로 음미하고 지내기가 어려운게 바쁜 세상살이다. 온갖 글들에 치어 살면서도 운율과 함축의 미학이 숨겨있는 시를 멀리하고 살았다는 생각에 연한 녹색의 바탕이 예쁘게 그려진 시집 한권을 선택했다. 그래도 소녀시절엔 시 쓴다고 노트에 긁적이기도 하고, 서점가에 들러 시집 코너에 자리를 잡고 감상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점점 시와는 멀어지는 생활인 아줌마가 됐으니... 잠시 실소가 난다.

이 책은 80개의 주제를 담아 시로 풀어낸 시집이다. 독특하게도 80개의 주제가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들이다. 간구, 감사로 시작되서 희망,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80개의 단어다. 아름답고 소중한 의미의 80개의 단어들은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봐도 좋겠다. 그래서 제목이 [키워드]인가 보다. 그것도 상실된 삶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우리 시대 시인 80명이 시로 노래한 키워드란 소개가 무색치 않다. 요즘의 내가 긍휼과 배려, 비움, 열정, 절제, 존중, 평안, 혜안, 화목의 단어들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더더욱 눈이 번쩍 띄였다^^

구성을 살펴보면 독특한게 시 한편 소개될때마다 그 주제에 대한 정의를 맨 위쪽에 달아 다시 한번 읽어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시와 접목시켜 생각해보게 되는 점에서 좋은 발상이었다. 맨 아랫쪽에는 시인의 등단시기와 시집명도 기재되어 있어서 나중에 시집을 고를 때 참고하기에 편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책의 끝부분엔 미니갤러리란 타이틀을 걸고 ’시를 읽는 화가, 시를 그리는 화가’인 박영님의 작품들을 몇편 만날 수 있는데 흰 옷을 입은 길다란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보면 저절로 기다림이란 단어가 생각나게 된다.

맨 처음 읽게 된 이건청님의 "소금"부터 시작된 시들의 향연은 정말 내겐 축복의 시간이었다. 마음 깊은 공감의 메시지를 읽으며 잠시 시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단어들을 떠올리며 안정되는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 어찌보면 삶의 허허로움을 달래주기엔 시만한게 없잖은가? 내재되어있는 깊은 의미를 생각하다보면 골몰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색의 기쁨과 함께 일깨움을 얻는 시간은 내게 참 고맙기 그지없다. 모처럼 휴식을 취한 것도 같은 생각에 기쁘기도 하다^^ 정말 살면서 가끔씩은 시집도 뒤적거리며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