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환구일록이라는 한국의 유산에 대한 방송을 통해서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열심히 검색을 하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과거 세계일주를 했던 사람은 서양인만 있는 줄 알았던 나에게 이 책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 낀 상태였던 조선 말기라는 시대적 상황도 흥미로웠지만 폐쇄적으로 살던 조선인이 세계 일주를 하면서 느꼈을 놀라움과 신기함이 더 관심이 갔다. 

 일본의 명성황후 살해사건과 아관파천이라는 사건이 일어난 뒤 조선은 일본을 상대하기 위한 방책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이기 위해 민영환을 특명전권공사로 하는 일단의 일행을 러시아로 보내는 데 이 여행을 기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해천추범 외에도 여행중에 지은 시를 담은 김득련의 환구음초와 부아기정, 환구일록이 있지만 이 책만이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여행기이다. (환구음초도 출간되었지만 시집이다.)환구일록도 속히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한다. 

 저자는 이 여행기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총 4번이나 그 여행로를 답사했다고 한다. 또한 그 일행이었떤 윤치호 일기와 김득련의 환구음초까지 참고하여 입체적으로 독자가 여행기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책을 썼다. 정말 충실하게 완성되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좌측의 사진은 당시 조칙을 재구성한 것인데 외부대신 이완용의 이름이 눈에 띤다. 후에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1인중에 하나이기에 유독 그런 듯하다. 그리고 같이 같던 윤치호 또한 후에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다. 이 윤치호의 일기 또한 출간되어 있기에 나중에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당시 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내던 황제는 자신의 신변에 대하여 정말 걱정이 많은 듯 했다. 물론 위치가 위치인 만큼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민영환이 러시아에 요구한 5가지 조건 중에 러시아 군으로 하여금 조선이 믿음직한 군대를 양성하기 전에 왕의 호위를 위한 경비지원이 있었다. 물론 이것을 러시아가 들어주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도 이 제안이 가장 원하던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오만불손한 일본을 가장 크게 견제할 수 있는 것이 군대였을테니. 5가지 조건중에서 겨우 두어가지만을 러시아는 받아들이였는데 그 이후 민영환의 자책하는 마음이 기록에 나타나 있다. 같이 동행한 윤치호 일기에도 그런 민영환의 모습이 적힐 정도이니 정말 충신이었다.

일정.

한성(4월1일 8시 출발) → 인천 → 상해(4월 4일) → 동경(4월 16일) → 태평양 횡단 → 캐나다(4월29일) → 아메리카 대륙 횡단 → 뉴욕(5월 6일) → 대서양 횡단 → 영국(5월 16일) → 네덜란드 → 독일(5월 17일) → 폴란드 → 러시아(5월 20일 모스크바 도착, 5월 26일 러시아 황제 대관식 참석, 8월18일까지 체류함) → 모스크바 출발(8월 19일) → 시배이라 횡단 → 블라디보스토크 → 인천 →  한성(10월 21일)

조선에서 중국을 지나 일본을 향하고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지나 영국에 도착하고 또 다시 유럽대륙으로 건너나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장구한 일정속에서 민영환은 매일같이 새로운 문물에 놀란다. 조선에서는 볼 수 없던 거대한 건물들과 미국의 거대한 땅을 지나는 기차 등은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러시아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신문물들을 견학하면서 조선을 변모시키겠다는 민영환의 마음은 점점 더 켜져갔을 걸로 보인다. 

좌측의 사진속에서 앞줄 가운데 인물이 민영환이다. 20대에 판서라는 요직을 거치고 이 세계일주를 했을 때의 나이가 30대 중반의 나이인데도 상당히 앳되 보인다. 민영환의 왼쪽에 있는 두 사람은 윤치호와 김득련이다. 그리고 뒷줄의 왼쪽 부터 김도일, 스테인, 손희영이다. 김도일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머리는 상투를 하지 않았고 양장을 입은 모습이다. 김도일은 본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민가서 살았다고 한다. 통역경험으로 인해서 이 일행에 포함된 듯하다. 서양인들이 이 조선인의 차림새에 상당히 관심을 표했다는 기록이 중간에 나온다. 일행이 숙소에서 나오기만 하면 막 쫓아다녀서 결국 그곳에서 제대로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확실히 눈에 띠는 차림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얼마나 신기했을지 어느정도 알 것 같다. 민영환의 눈에 보인 서양의 문물에 대한 신기함과 같지 않았을까? 생전 처음보는 광경에 대한 놀라움과 신기함, 그리고 호기심이 뒤섞여 보는이의 눈에 담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많은 내용을 차지 하는 것은 러시아에서의 기록이다.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2세의 서한을 기다리는 동안 박물관, 화폐제조소, 극장 등 다양한 곳을 방문했으며 감옥까지 둘러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각국 공사들도 만나고 러시아 사람들의 초대를 받아 그 친절함을 느꼈다. 변방의 소국이나 다름없어 보였을 텐데 괄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투의 기록이 대부분이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후한 대접을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었는데..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민영환은 이 구미여행으로 인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독립신문 건양 원년 11월 24일 자에는 "종래의 민판서가 아니라 새 사람이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 여행으로 보고 느끼고 알게 된 것을 통해서 민영환은 근대국가로의 발전을 꾀하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비어십책>을 통하여 인재등용과 과거제 폐지, 육해군 창설, 지폐발행 등 다양한 근대적 국가로의 발전을 위한 방책들을 제시했다. 물론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욕을 먹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에도 결국 을사조약으로 그 주권을 상실했으니 당시 민영환의 상심은 말로 다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은 결국 45세의 나이로 자결하고 만다. 젊은 나이에 요직을 두루 거치고 특명을 받아 드넓은 세상을 돌아보고 그 경험을 통해 근대국가로의 발전을 꾀했던 그의 자결은 이후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드넓은 세상을 둘러봤음에도 경험한 것을 통해 나라를 바꾸지 못해 얼마나 탄식했을까? 이제 막 나라를 바꿔보려고 하는데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나라의 주권은 침탈당하고 그에 동조한 매국노들은 떵떵거리며 지내고 있는 현실속에서 차마 살고 싶지 않았을 그의 마음을 떠올리니 여행기가 단순한 여행기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