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어이, 큰딸. 어버이날이네.”

“으악! 도대체 누가 어버이날을 만들었어?”

“그러게. 너무 감사하네. 그 어버이날을 만들어준 사람, 누군지 몰라도 상주고 잡네.”

“엄마, 꼭 선물을 해야 어버이에게 감사하는 건 아니잖아. 나 엄마한테 마음으로 무지 감사하고 있어.”

“감사는 당연한 거고 선물을 선물인 거고. 네 어머니라는 사람은 꼭 선물을 받고 싶네.”

“엄마, 엄마가 그렇게 세속적인 사람은 아니잖아.”

“아냐. 네 엄마, 세속적이야. 선물 꼭 줘. 너 매년 그냥 입 닦더라? 나이도 어린 것이.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마라.”

작년, 저는 어버이날마다 입 닦는 큰딸에게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선물을 받으리라 각오를 하고 기숙사로 몇 번의 전화를 넣었습니다. 또 평상시 친정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도 꼭 딸들을 불러서 “잘 봐라. 부모님 용돈은 이렇게 꼭 따로따로 봉투를 마련해서 드려야 하는 거야. 봉투 하나에 주면 네 아빠가 삥땅치고 엄마는 안 줘”라고 구체적으로 용돈 주는 요령까지 알려줬습니다.

이렇게 매년 기숙사에 전화를 걸어 큰딸에게 어버이날에 밑줄을 긋고 강조에 강조를 하지만 돌아오는 것이 별로 없어 작년에도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한길이는 해주와 달리 알뜰을 넘어선 짠순이여서 어버이날이라고 돈을 쓸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대를 한다면 돈 안 드는 편지 한 통 정도는 보내오지 않을까 했습니다.

“엄마, 어버이날 선물.”

“어머? 진짜 선물 주는 거야? 근데 선물이 공책이야?”

“그래! 그렇게 딸한테 받고 싶어서 난리를 치시는데 줘야지. 그거 그냥 공책 아니거든. 내가 그거 쓰면서 팔 부러지는 줄 알았어.”

“이게 뭔데?”

“내가 한 달 동안 엄마한테 쓴 <수제작 편지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아빠 따로 엄마 따로 매일 쓰는데 죽는 줄 알았어. 그렇다고 아빠한테 쓴 내용을 그대로 엄마한테 베낄 수도 없고. 또 내 일기는 일기대로 써야 하고, 샘하고 교환일기도 써야 하고. 대박으로 힘들었어.”

“너 설마 수업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죽어라 이것만 쓴 거 아냐?”

“아니거든. 묵학 시간에 썼거든. 에이, 도로 내놔.”

한길이는 한 달간 저와 남편에게 따로 따로 매일 편지를 썼습니다. 어떤 날은 짜증이 묻어나는 대로, 어떤 날은 흥분된 기분으로, 또 어떤 날은 책 읽고 느낀 점을 솔직히 썼더군요. 딸이 준 편지는 매우 다양한 내용이었습니다.

딸에게 사귀자고 고백한 아이의 이야기도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딸의 답답함도 있습니다. 편지를 다 읽은 저는 진지하게 고백한 그 아이와 사귀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사귀라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딸에게 “네 나이에 연애를 안 하면 언제 할래?”라고 했습니다. 딸은 자기가 남자를 사귀기에 너무 이르답니다. 중3이면 조금도 이르지 않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제게 “그런데 엄마가 연애를 알긴 알아?”하면서 저를 무시합니다. 아니, 아무려면 마흔을 넘긴 엄마가 10대인 딸보다 연애를 모르겠습니까. 열 명의 남자를 사귀고 네 아빠랑 결혼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딸은 귓등으로도 안 듣습니다. 엄마의 연애 실력이 검증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쨌든 딸의 편지북을 읽으면서 제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도 아이는 빛을 향해 나무가 뻗듯 잘 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길아, 정말 고맙다. 이런 선물 처음이야.”

“그럼 고마워야지.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응, 그래 다음엔 팔도 아플 텐데 그냥 용돈 모아서 비싼 지갑 같은 거 사줘.”

“헐. 엄마! 진짜 엄마 맞아? 다른 집 엄마들은 그렇게 말 안 해.”

“나 실은 너희 엄마 아니야. 옆집 아줌마야.”

이렇게 해서 한바탕 딸들과 웃었습니다.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해주에게 받았습니다. 해주가 어버이날 아침에 편지를 주면서 말합니다.

“엄마, 내 친구는 편지를 쓰면서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하는 자신이 너무 가식적이래. 근데 난 진심이야. 엄마 아빠한테 정말 고마워. 딴 집은 한 번 말해서 안 들으면 바로 아웃인데 그래도 엄마는 세 번까지는 봐주잖아.”

딸의 말이 칭찬인지 핀잔인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만 표정이 진지한 걸로 봐서 진심인 것 같습니다. 가식의 말을 안 쓴다는 해주 편지에는 진짜 고맙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이럴 땐 좀 가식적이어도 되는데 말이죠. 저래서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쪼매 걱정됩니다.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해주면 좋을지 생각해보기

 

어버이날, 자식인 동시에 저도 어버이가 됐습니다. 자식이 내게 어떤 선물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기 전에 나는 내 부모에게 어떤 선물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부모를 대하는가 보게 됩니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합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저만큼만 합니다. 그래서 효자 밑에불효자식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갑자기 내가 죽고 없을 때 내 자식들은 날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부모 생각에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도, 가슴이 약간 아린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킥킥거리고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심각한 부모, 늘 진지한 부모보다 전 경쾌한 부모가 좋습니다. 자식과 친구 같기도 하고, 선배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하고, 하지만 위로가 필요할 땐 부모 같기도 한 사람. 좀 어렵나요? 그럼 다 빼고 제가 10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그리며 빙긋 웃듯이 제 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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