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마치 내가 유비이고, 관우이고, 장비라도 되는 양 어깨와 손에 잔뜩 힘을 주며 열심히 보았던 만화책이 삼국지였다. 학창시절에는 유비의 덕과 관우, 장비의 용맹과 의리, 제갈공명의 지략을 읽으며 나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던 책 역시 삼국지였다. 그러다 최근에 TV를 통해 영화 적벽대전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느낌을 갖고 다시 한 번 삼국지에 빠져 들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오래 전에 보고, 읽었던 삼국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많은 작가에 의해 편집, 출판된 책들을 접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늦은 시간까지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새롭게 알게 된 ㅡ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내가 건성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라 ㅡ 여러 사실들은 역사와 책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삼국지의 내용이 역사서인《삼국지 정사》가 아닌 소설 《삼국지 연의》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존의 삼국지가 갖고 있는 흥미 위주의 이야기 틀에서도 벗어나고 삼국의 인물로 대표되는 유비, 조조, 손권도 아닌 유비의 책사 제갈공명에 초점을 두고 쓰여진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태생의 중국인 작가 진순신이 일본의 한 계간 잡지에 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연재했던 것을 2권의 책으로 펴낸 것 중 그 1권이다. 그는 일본 내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 소설을 잡지에 연재하거나 책으로 출판하고 있는 역량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본 1권에서는 제갈양이 태어나는 장면을 시작으로 하여, 그가 태어나기 이전인 후한 말의 역사 상황을 제갈양의 시대를 성격짓기 위한 역할로 약간 언급하였다. 정치가 어지러워져서 천하는 전란 속에 휘말려 들어갔고, 전국 각지에서는 반항집단의 혼전으로 인해 천하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백성들은 도탄의 고통을 겪었다는 전한 말기 때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가운데 그 시대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닌지를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후한 말, 비교적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제갈규의 집에서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는(亮)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亮’이란 밝음을 의미하고, 뒷날 관습에 따라 스스로 자를 지을 때에 공명(孔明)(매우 밝다)이라는 두 글자를 골랐는데 본명의 의미를 살린 것이라 한다. 그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숙부에게 의탁되어 자라면서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과정과 함께 삼국지의 내용이 되는 시대상황을 함께 그리고 있다.

 

이십 대의 나이에 와룡선생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져 전도가 유망한 인물이었던 제갈공명은 유비의 삼고초려 끝에 천하 인민을 전화(戰火)에서 구출하는 1단계로서 구상했던 '천하삼분(天下三分)'을 실현하기 위해 출사를 결심하게 된다. 당시 어떤 세력에서도 출사를 환영할 명성을 지니고 있던 그는 구태여 보잘 것 없는 세를 지닌 유비에게 출사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나 유비의 어진 인성을 믿고 선택한 것이었다. 그후 지략을 펼쳐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8세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삼국지라는 역사서와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제갈공명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히 조명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