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어느 것 보다 추리소설에서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긴장감 그리고 극적인 반전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그같은 묘미에 빠져 최고의 추리작가라고 할 수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탐독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뿐만 아니라 많은 추리작가들이 발표한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그 놀라운 추리력과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잘 짜여진 구성, 빠르게 변하는 상황전개에 감탄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 마다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이 있었다. 그것이 타고난 한국인의 급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나 혼자만의 조급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전의 결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슬쩍 슬쩍 뒷장을 넘겨 볼 때가 있었다. 특히 추리소설의 대부분이 몇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인 경우가 많아 더욱 그랬던 같다.

 

그 이후 정말 오랜만에 접하게 된 추리소설이 바로 이 책《백야행》이다. 이 책은 1999년《비밀》로<제 52회 추리협회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며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그런 유명 작가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추리소설의 경우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반면에 일본 작가의 작품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해마다 무수히 많이 발표되고 있어 단지 그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 작품 대부분이 깊이나 내용 면에서도 소홀하지 않은, 비교우위에 있다고 생각되었기에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이상한 러브스토리.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라는 의미를 생각하며 표지를 연다. 이야기는 공사가 중단된 건물 안에서 중년의 남자가 살해된 채 발견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살해당한 남자는 동네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52세의 남성으로 그에게는 호스티스 출신인 삼십대 초반의 아내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있다. 사건이 있던 날 남자는 은행에서 거금을 인출하여 다른 여자를 만났고,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집에 딸려 있는 전당포에서는 40세 전후로 보이는 점장이 일하고 있었다. 이 같은 단서를 근거로 하여 조금씩 조금씩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제 나는 오래 전과 달리 책의 한 쪽 한 쪽을 차례대로 넘겨 가며 소설 속 피해자가 되고, 피의자가 되고, 목격자가 되고, 추적자가 되고, 주변 인물이 되어 보려고 한다. 결말을 미리 알기 위해 가졌던 조급함 보다는 느긋하고 여유있는 마음을 갖고 마지막에 펼쳐질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면서 추리소설이 주는 재미를 마음껏 느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