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재 정신이 이상한 상태에 있는 사람과 바로 조금 전까지 정신이 이상했다가 잠시 돌아온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면 과연 어떤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아마도 이 책에 등장하는 디안과  로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짧은 문장 하나에 그 보다 몇 배 이상의,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객관적이지도 않은 생각을 표현한 비유의 글이 그렇고, 철학적, 몽상적, 형이상학적이다 못해 횡설수설하는 듯한 대화를 장녀스럽게 주고 받는다는 게 또 그렇다.

 

전체 내용 중 뒷장 9/10정도 까지는 그 같은 상황의 연속이다. 나머지 1/10까지 계속 이런 이야기가 전개 되었다고 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둘의 대화에 끼어 들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정신이 이상해진 나머지 같이 횡설수설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나는 역자의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속에서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자신과 시선이 마주친 사람에게서 삶의 조각을 훔치는 로즈(Lose).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한 자락을 잃어버리게 만드는데, 그는 그렇게 훔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다. 일반적인 기억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무심함 속에 지나쳤던 것들,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버려 두었던 것들까지 모두 기록으로 옮긴다. 모방이 아닌, 살아 있는 생생한 삶을 담아 낸 책을 쓰기 위해, 현실의 완벽한 재현을 통해 삶 그 자체를 담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함으로써 그 존재가치를 되살아 나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는 역자의 글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영영 헤어나지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 소설 속에 담긴 뜻과 의미 보다는《지나가는 도둑을 쳐다보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절묘함과 "우린 기억이 아닌 더 소중한 누군가의 마음마저도 서슴없이 훔치기도 한다" 라고 했던 역자의 말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