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중 일부는 한 장면 한 장면에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흘린다. 분명 그것이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연출된 장면 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드라마의 내용이 허구이건 사실이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할 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픽션인 소설도 독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다. 작가의 역량에서 오는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전개되는 이야기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두고 옳다, 그르다 식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한 나라의 역사라고 한다면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게 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글을 쓴 작가가 우리 역사의 전.후 사정이나 그 속에 내재된 여러 상황, 문화,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ㅡ 그것도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작가 ㅡ 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게다가 그 소설을 읽는 대상을 작가와 같은 외국인에게 두고 있다면 설령 그것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 소설이라고 이라고 하더라도 한 뻔쯤의 문제제기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책은 한국계 프랑스 작가 이자벨 라캉이 쓴 것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여류작가이다. 그녀는 런던과 파리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얼마만큼의 한국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이 책을 썼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순전히 픽션이고,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폈고, 온전히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구한말 황제의 밀명을 받아 프랑스에 파견된 밀사이다. 그에게는 분명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단 한가지의 일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작가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른 일도 아닌 나라를 구해야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황제의 밀사가 프랑스에 건너와 하는 일이라곤 관리를 만나기 위한 형식적인 행동뿐이고, 그 외 대부분의 기간 동안은 그저 그런 사랑타령이나 하며 보내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비춰지질 않는다. 고국에 아내와 자식을 두고 온 유부남이 외로움을 못 이겨 현지 유부녀와 불륜행각을 벌이는 것쯤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조선의 고결한 선비는 이러하다는 양 사창가에서 창녀와의 하룻밤을 그냥 보냈다고 하는 다분히 위선적인 모습을 작가는 그려 넣었다. 본분을 망각한, 일탈을 사랑으로 애써 포장하기 보다는 이국에서의 외로움과 조국에 대한 걱정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창녀를 찾아 회포를 풀었다고 했더라면 오히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느껴졌을 것이고 그의 심정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억지로 가져다 붙였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프랑스를 사랑한 조선 남자, 그리고 그를 사랑한 프랑스 여자라는 표지의 글은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쓸데없는 염려와 걱정에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역량부족인 작가의 짧은 식견과 무례한 글 장난으로 인해 혹 많은 유럽인들에게 "그러니 너희가 나라를 잃었지......" 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와 함께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 전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고위 외교관인 영사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모습이 이렇지는 않은지 심히 염려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