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두꺼운 책이다. 제일 마지막 장 아래에 607이라고 적혀있다. 이 책은 들고 다니는 것조차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만들었다. 무거운 성경책을 연상케하거나 아령을 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사이즈였다. 하지만 ‘이런 책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나 자신을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고 들고 다니는 내내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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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과 표지에서 정통 미스터리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시작도 그러했다. 주인공의 옆방에 정체 모를 우편물이 배달되고 그 우편물이 폭발하면서 범인을 찾는 숨 막히는 추리가 펼쳐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어가는 동안 그러한 긴장감은 다소 풀려버린다. 주인공 리를 중심으로 주변의 인물 그리고 그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상황의 묘사가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독자들을 맥빠지게 만든다.

 

이민자 출신의 주인공 리의 삶은 다소 마이너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겉보기엔 성공한 수학과 종신교수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 곳곳에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피해의식은 동료 교수 헨들리가 폭탄 테러를 당했을 때 ‘통쾌하다’는 묘한 생각을 가지게끔 만든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심리와 사뭇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그 속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그 비교 대상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를 은근 기대하는 심리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묘사에 있다. 꼼꼼하고 세세하며 디테일하게 인물과 상황 그리고 심리를 묘사하지만, 이러한 것들로 인해 빠른 템포의 진행은 기대할 수 없다. 전통적인 고전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한편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이런 것들까지 세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는데 중압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리 박사님은 이 사건 수사에서 요주의 인물입니다. 우리는 박사님과 의논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사의 통상적 절차이며 계속 진행 중입니다.” 연방수사국측 정보원은 확인해주었다. 폭탄사건 당시 리 박사는 폭발이 일어난 방 옆에서 근무 중이었다.” P370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주인공 리는 요주의 인물로 찍히게 되지만 자신의 결백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의심하고 있던 전처의 남편이자 옛 친구였던 게이더가 용의자라 주장하지만 게이더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미스터리적인 이야기는 결국 제3의 인물이 용의자로 밝혀지고 그는 요주의 인물에서 벗어난다.

 

이 소설에서 전체적인 전개는 위에 서술한 바와 같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들은 아마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건의 흐름과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그 사이에 자신과 관계되었던 가족들의 모습들을 재발견하면서 남아 있는 자식들과의 앞으로의 삶을 독자들 스스로 그려보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것 같다.  

 

책을 끝냈지만 만족스러운 부분과 불만스러운 부분이 공존한다. 기대했던 부분을 건지지 못한 허탈감과 생각지도 못 했던 고전과 같은 작품의 깊이와 무게가 이 글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그냥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 책을 접한다면 그냥 그 자체에서 이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서사의 매력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