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들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인문학이다. 사실 내가 느끼는 인문학은 그냥 밥 벌어먹기 힘든 학문이고, 실제 돈과 직결되지 않은 학문이기 때문에 나의 관심 대상에서 멀리 있던 막연하고 추상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나도 지쳐가고 사회도 지치다 보니 돈과 물질보다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그렇다고 물질적인 것이 풍부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현실에서의 도피라기보다는 위안거리를 찾고 그 위안거리가 바로 변하지 않는 인문학은 아닐까?

 

최근 인문학의 열기에 편승하여 나 또한 과연 인문학이 무엇일까라는 진지한 고민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보다 편하고 쉽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이 책은 국내 인문학 대가 15명이 각자의 시각과 주제로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옴니버스 형태의 인문학 특강 서적이다. 다양한 학자들의 깊이 있는 해설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한계 때문인가? 책을 끝냈음에도 전체적인 흐름이 잡히지 않는다. 뷔페에서 음식을 잔뜩 먹었지만 정작 나와서 배부르다는 것을 제외하고 별로 남는 것이 없는 느낌이다.  

 

깨어나면 주어지는 상황과 날마다 얽히는 씨름질… 자잘한 걱정거리에 잠 못 들다 거대한 공포에 질리는 우리네 인생. 시비를 가릴 땐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나르고, 붙잡은 것을 지킬 땐 하늘에 맹세한 듯 꿈쩍도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마침내 지치고 눌려 낡은 하수구처럼 막힌 죽음 가까이의 정신은 떠오르는 빛을 다시 보지 못한다.   P126 (장자가 현실을 진단한 글중)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인문학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책에서 주로 다루는 동양의 고전들은 역시 고전다운 이야기들이 많다. 공자, 장자부터 법정스님까지 동양의 현자들과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 행적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부터 남의 일처럼 와 닿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들까지… 절반은 전자이고 절반은 후자이다. 역시 나의 얕은 내공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독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골륜탄조’입니다.골륜탄조는 새가 대추를 맛도 모르고 통째로 삼킨다는 뜻으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껍질을 벗기고 살을 벗기고 뼈를 벗기고 골수가 벗겨질 때까지 고전은 파고들어 씹어야 합니다. 마치 곰탕 국물을 우리듯이 해야 된다는 겁니다. P144

 

15편에 이르는 인문학 특강들을 끝내니 학창시절 들었던 교양과목들이 생각난다. 학점을 위해 졸업을 위해 들어야만 했던 수많은 교양수업들. 그때는 미처 알지 못 했던 인문학의 깊이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게 된다. 꼭 돈과 현실적인 것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알 수 없는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무언가가 인문학에 있다는 것을…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보면 변화하지 않는 것, 혹은 매우 느리게 변화해 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저는 인문학이 이런 변화하는 시대에 중심을 잡아주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답을 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P27

 

세상에 절대적인 지식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실이 개개인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고민할 때 인문학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곳에도 답은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