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서를 읽어 본 건 손에 꼽힌다. 읽기도 어려울 뿐더러 읽을 이유도 별로 없었다. 굳이 일부러 찾아 읽지 않고서는 잘 요약된 백과사전이나 잘 정리해놓은 블로그 등을 통해 읽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이해가 쉽다. 마치 콩으로만 먹으면 씹기가 불편해 아이들이 싫어하지만 두부로 만들어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면서, 그래 이제서야 콩의 맛을 알았다. 오독오독 씹는 맛이 불편한듯 하면서도 고소하고 감질맛이 났다. 두부를 먹을 때는 두부 만드는 장인의 손맛이 느껴지지만, 콩 채로 먹으니 콩농사를 짓는 농부의 땀과 노력이 느껴졌다.

 

  역시 자유론을 날것으로 읽었다. 다 읽은 내가 참 대견하다. 사상서를 읽는 맛을 알았다. 저자 직강을 듣는 기분이랄까. 사실, 자유론은 <서울대인문고전50선 : 만화 자유론>을 통해 먼저 접했다. 만화가 이해가 쉽고 재미있어서 원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두부를 먹고 콩맛이 궁금해졌다랄까. 논술 수업을 하는 중에 학생이 이 책을 읽고 있어서 중고책을 구입한다는 마음으로 빌려 읽었다. (돈은 내일 줘야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 당연한 것 아닌가요? 수업시간에 다 배운 내용이던데. 학생들의 말이다. 그래, 이 자유에 대한 교육은 도덕 시간에, 사회 시간에 이루어진다. 나도 기억난다.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등 36페이지부터 38페이지까지 자유의 영역에 대해 정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표현이 멋지다. 특히 마지막에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다.' 라고 마무리 하는 부분이 멋졌다. 원서에서는 영어로 표현했을텐데 이 부분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고 싶다.

	자유의 기본 영역으로 다음의 셋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내면적 의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우리가 실제적이거나 사변적인 것, 과학, 도덕, 신학 등 모든 주제에 대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이다. (중략)   둘째,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중략) 셋째,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서 이와 똑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 결사(結社)의 자유가 도출된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강제나 속임수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성인이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자유를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 우리의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위하는 최고의 적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각 개인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다.
페이지 : 36~38

   당연한 자유. 그러나, '밀'은 이처럼 어떤 주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라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안이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면서 그 문제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악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의 절반은 그런 버릇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떤 작가는 "확정된 결론은 깊은 잠에 빠진다"고 말했는데, 정말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페이지 : 87

  만약 우리 시대에 자유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자유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다. 이 책이 워낙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다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마는, 대중의 횡포에 대한 경계라던지, 이론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멸한다던지, 관습에 지배당해서 개별성을 나타낼 수 없는 민족은 쇠퇴했다던지 하는 내용들은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요즘 시대에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만 벌써 세 번째 쓰는 서평이다. 앞에 쓴 두번의 서평은 컴퓨터 오류로 날라갔다. (확인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오류가 일어나면서 공들여 썼던 글이 날아가는 기분을 아시는지. 그것도 두 번씩이나!) 덕분에 이 책을 세번이나 복습하며 읽을 수 있었다. 처음 서평과 두번째 서평에서 나는 이 책이 컴퓨터로 편집이 안되는 시대에 만든 책이라는 핑계를 대며,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없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세번 복습하며 반복해 읽다보니 이젠 빠르게 원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반복해서 읽으라는 하늘의 계시로 알고 사라져버린 두 개의 서평에 묵념을!) 내 생각엔 두 번째 서평이 잘 썼는데, 날아가버려서 아쉽다. 다음부터는 날리지 않도록 한글에 복사해놓는 습관을 들여놔야겠다.

 

어쨌든, 자유론으로 자유에 대해 정신무장을 했으니 이제 난 진짜 자유인이 된 기분이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자유, 밀, 책세상, 서병훈,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