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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우유신이라고 했다.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했지 않은가. 팔랑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란 무엇인지 우정이란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정이 무엇인지는 이 책의 저자도 명료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심리학자인데, 다양한 우정의 모습을 깨달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처럼, 우정 또한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우정의 모습을 살펴 보고자 한다. 이를 정리하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우정의 형태가 잡힐 것이다.

1. 가장 이상적인 친구 :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사람

그럼 친구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이렇게 되면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 나는 융파 분석가인 아돌프 구겐빌 크레이그의 '우정'에 대한 강의를 떠올린다. 그가 젊었을 때 아버지에게 '우정'에 대해 물었더니 "친구란, 밤 10시에 자동차 트렁크에 시체를 넣고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할 때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고 한다. (중략)

확실히 이것은 훌륭하고도 '가장 이상적인 친구'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게다.

페이지 : 10~12

어릴 적 우리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세계적인 민담이었던 모양이다. 어릴 적에 들었던 이야기는, '멍석에 만 돼지 사체를 죽은 사람이라고 속이고는, 살인을 저질렀으니 숨겨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했을 때 들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였던 걸로 기억한다. 위의 인용한 내용과 결말이 좀 다르다. 부탁을 듣기만 해주는 선에서 끝나느냐 도와주기까지 하느냐의 차이다. 확실히 서양인은 합리적이다. '도와주기 전에 얘기부터 들어보자'니 말이다. 어쨌든, 글쓴이에게 가장 이상적인 친구는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 주는 사람'이다. '모모'가 생각 안날 수가 없다. 아돌프 구겐빌 크레이그도 독일 사람 같은데, 독일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동을 높이 사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이에 동감한다. '모모'를 읽고 깨달은 게 많았으니까.

2.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흐린 물로 가라.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 이것은 오래된 속담이다. 잘 알다시피 여기서 말하는 '너무 맑은 물'은 '계산이 빠른 영리한 사람'을 뜻한다. '비판적 시각이 날카롭다'는 의미도 있겠다. 그런 사람에게 고기(친구)가 모이지 않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친구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굳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페이지 : 24~25

난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속담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해석이 잘 못 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물'은 환경이고 '고기'는 생물이다. 즉, '계산 빠르고 영리한 사람'은 물이 아니고 고기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나는 두 가지로 해석해보겠다.

첫째는, 깨끗한 물에서 놀고자 하는 고기는 친구 고기를 사귈 수 없다는 것이다. 왜? 다른 고기들은 흐린 물에서 놀고 있으니까. 그런 곳은 대부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 또는 유희의 장소일 것이다. 욕설이 오가도 즐겁고, 뒷담화가 오가도 즐거운. 당구장이 될 수도 있고, 커피숍이 될 수도 있고, 피씨방이 될 수도 있겠다. 맑은 물에서만 놀면서 친구가 생기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친구를 사귀려면 흐린 물에서도 놀 필요가 있다.

둘째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물을 맑게 하는 고기가 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껏 친구 고기들 많은 흐린 물을 찾아가서 한다는 짓이 물을 맑게 하는 일이라면? '너만 잘났니?' 하며 다들 도망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 고기들도 쉴 때는 쉴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흙탕물에서 노는 이유는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겠나? 물을 맑게 하면 오히려 숨지 못해 죽임을 당하는 고기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3.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20~30년이 지나 동창회를 한다. 이런 자리에서는 서로 별명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작가 엔도 슈사쿠는 그런 정경을 매우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는 어릴 때 가까이 가면 콤콤한 냄새가 나서 '콤콤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별명을 공유하는 모임의 친구관계를 일컬어 그는 "지난날의 숨기고 싶은 모습이나 약점을 서로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멋져 보이려 해도 소용없는 사이"라고 했다. 즉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지위나 재산, 명성과 상관없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이다.

'소꼽친구'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세상의 평가나 이해와 상관없이 서로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만나면 옛이야기를 하는 게 동창회의 특징이다.

페이지 : 26~27

100% 공감한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어느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이 먼저 스스로를 인정해야 한다.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 못하면 남들에게는 더욱 숨기고 싶어서 서먹해지고 말 것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좋을 것 같다.

4.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

하지만 유능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도 절친한 교우관계의 파국을 체험하는 경우가 있다. 그 한 가지 요인으로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마음도 그 깊은 곳과 가까워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은 어둠의 세계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불안하고 어두운 마음이 꿈틀거린다. 관계가 친밀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어두운 내면을 알아간다는 뜻이다. 그때는 선악의 판단이 흐려지기도 하고 상반된 감정이 개입되기도 한다. 불가결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중략)

아랍 속담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은 함께하되 거처할 텐트는 거리를 두라.' 절친한 친구라도 지내는 공간은 따로 하라는 말이다. 참으로 현명한 속담이다.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관계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친구 사이에 '거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페이지 : 32~34

너무 가까워지면 오히려 관계가 끊어진다는 말이다. 적당한 거리. 이것은 지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 살면서 경험으로 쌓을 수밖에. 사람마다 적당하다고 느끼는 거리의 기준도 다르다. 친구와의 적당한 간격을 찾기 위한 시간적 경험이 필요하겠다.

5. 홀로 설 수 있는 우정

홀로 서겠다는 생각 때문에 언제, 어느 누구와도 하나되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것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친구와 한마음 한뜻을 나누는 멋진 경험을 하되 너무 깊이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몰입하면 '감정의 숙취'가 생기게 마련이다. (중략)

친구관계에 의해 인간은 아름다운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머물러 있다 보면 그것이 곧 홀로서기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 교우관계의 미묘한 맛이 있다.

페이지 : 96~97

가장 중요한 말이다. 중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들에게까지 유효한 말이다. 친구 관계에 의존하다가는 졸업하고 나서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홀로 서기도 잘 하고 친구 관계도 유지할 줄 아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때의 홀로 서기는 단순히 가족으로부터의 독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비롯한, 친구, 애인, 조력자, 선생님, 스승 등에게 의존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하인이고 나는 왕이다'라는 마인드를 갖고 사는 것이 홀로 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훌륭한 왕이어야 하겠지만.

6. 가까운 사람이 배신하는 이유 - 동일시에 대한 자립성 지키기

그들은 짧은 시간에 급속히 가까워졌다. 함께 미국 초청 강연을 가서 그들은 서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분석했다. 오늘날 우리들이라면 절대 이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강렬한 동일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략) 진심을 다한다면 어느 한쪽의 인격은 무너져버린다.

여기서 극단적인 표현을 하면 그들은 우정을 배신함으로써 각각 자립성을 지킬 수 있었다. 두 인격체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페이지 : 108~109

우정이 깊어지면 동일시가 일어나는데, 이에 개체는 자립성을 지키기위해 배신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다. 공감한다. 부부싸움도 그래서 일어나는 것일까?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고 하지만 유전자는 자립성을 지키기를 원하므로 싸움을 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박경철씨와 안철수씨의 관계가 걱정이 된다. 요즘 강의 같이 다니면서 많이 친해지셨을텐데 동일시가 일어나면 어떡하지? 둘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지혜롭고 연륜 있는 분들이라 관계 유지를 잘 하시리라 믿는다.

7. 경쟁심과 우정

'서로 마음을 아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인으로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작을 몇 번 같이 하다 보면 확실히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여기에 게임이나 승부를 겨루는 내기의 재미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승부를 내거나 즐기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인간미'가 드러나며 우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중략)

이런 인생의 미묘한 맛을 알고 우정을 도탑게 한다는 의미에서, 함께 내기하는 친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시사적인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 맞서되 승부의 바탕이 되는 공통된 규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두 사람은 맞서면서도 협조한다. 내기에 열중하면서도 그것이 '놀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이 균형은 실로 의미 있는 것이다.

페이지 : 129, 136

경쟁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나는 놀이로서의 경쟁심이 동일시를 예방해준다고 생각한다. 승자와 패자로 나뉨으로써 동일시를 예방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정은 또 돈독해지니 일석이조다. 다만, 친구와의 경쟁이 지나치면 홀로 서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경쟁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홀로 서기를 방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흐린 물에서도 놀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친구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게임이나 승부를 겨루는 내기가 도움이 된다. 우정과 홀로 서기의 균형을 잘 유지하자.

우정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우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바둑 상대는 밉기도 하지만 그립기도 해'

페이지 : 135

우정, 친구, 심리학, 가와이하야오, 박지현